최승호(56) 감독이 두 번째 영화로 ‘사고’를 쳤다. 공영방송 9년의 몰락사와 권력에 결탁한 공범들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이 개봉 18일째인 3일 오전 20만 관객을 돌파했다. 시사 다큐영화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록적인 흥행이다. 대중에게 ‘PD수첩의 그 PD’로 기억되는 최 감독을 덕수궁 돌담길 옆 뉴스타파 집무실에서 만났다.

 

 

- 흥행이 폭발적이다. 청소년부터 중장년,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세대가 극장을 찾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라고 보나.

▲ 지난해 촛불집회에 대거 참여한 중장년층은 기성세대로서 대한민국에 대한 걱정이 많다. 언론이 이 정도였는지 몰랐기에 놀라움과 책임감이 공존하는 듯하다. 젊은 세대는 ‘아,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였어’라는 놀라움이 지배적인 것 같다. 한번은 어떤 여고생이 영화를 본 뒤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느꼈다"며 고맙다고 하더라. 상당히 뜻밖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용마 기자, 김민식 PD의 침묵하지 않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모습이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 부조리한 상황이 이어져 답답함에도 흥미진진한 극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연출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 지루함을 줄이기 위해 3개 파트로 나눴다. 중간중간 과거를 그리면서 그 일을 했던 사람들을 현재 시점으로 찾아가서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보는 부분들이 관객에게 긴장을 이완시키는 동시에 웃음을 주지 않았나 싶다.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 했다. 보신 분들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자백'보다 10배는 더 재밌다고 한다. '자백'은 분위기가 공포스럽고 감정이 무거운데 '공범자들'은 진행과정이 재밌고 웃기기도 하고. 좀더 편하게 선택하는 듯하다. 평소 둘러싸여 사는 방송에 대한 거니까...'자백'의 경우 간첩, 조작, 탈북자란 키워드 때문에 선뜻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 삽입된 인터뷰 신들이 묘미다. 전직 대통령, 공영방송사 경영진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침묵과 회피, 궤변만이 들려 실소가 나오다가도 참담한 기분이 든다는 반응이다.

▲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렇다. 유도한 상황도 아니고 물어봤을 뿐인데 상식에 어긋나게 반응하니까...그 정도의 고위 공직을 역임했다면 책임이 있는 건데, 언론인의 질문에 답하는 게 맞다. 설령 거절을 하더라도 금도가 있는데 그런 부분을 보여주지 않으니까 황당해하는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예 “나한테 그걸 왜 물어?”라 하지 않나. 자신이 김재철(MBC 전 사장)을 내려보낸 거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줬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했고, 그의 하수인들이 방송을 지배했던 게 현실이다. 그들의 반응을 보며 관객은 웃으면서 한편으론 기가 막힌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거다.

 

 

- 최 PD의 돌직구 인터뷰가 액션 블록버스터를 보는 듯 쾌감을 준다고들 한다. 인터뷰어로서 특히 한솥밥을 먹었던 선배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고 직격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아는 사람한테 질문하는 게 더 어렵다. 내 신분이 이중적이 돼버린다. 피해 당사자이기도 하고 취재자이기도 하니까. ‘자백’ 촬영할 땐 원세훈씨 만나기 전에 “화를 내면 안돼”라고 마인드 콘트롤을 했는데 이번엔 그보다 몇 배는 더했다. 김재철씨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서 더 화가 났고, 안광환씨는 나를 보자마자 비상구 계단으로 도망가니까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서 너무 당황스럽고 참혹하기까지 했다. 권력의 끝이 저런 거구나. 좋아하진 않았으나 PD 선배라 과거 일하는 걸 지켜본 대상인데 그 정도 인물인지 몰랐다. 물론 그들 역시 수십년 동안 알아온 내 앞에서 거짓말이나 헛소리 하기도 애매했을 것이다.

 

- '자백'의 김기춘 원세훈, '공범자들'의 김장겸...인터뷰만 했다하면 구속수감, 체포영장 발부다. 이러다 '데스노트' '저승사자'란 소리 듣겠다.

▲ 하하하. 아직 많이 남았다.

 

- 극중 기자·PD·아나운서들이 부당 인사전보로 스케이트장 관리 업무를 하는 장면이 쉬 잊히질 않았다.

▲ 우리 시대의 아유슈비츠 수용소 같은 곳에서 지난 5년 동안 그들이 살아왔다. 공범자들이 가스실에 보내서 죽이진 않았지만, 언론인으로서의 DNA를 질식시키려는 의도로 그런 짓을 한 거다. 그들이 실패했다고 본다.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다. 싸워야지 뭐.

 

- 영화는 암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와 지난 9년간 MBC KBS YTN에서 해고·징계를 당한 무수히 많은 구성원들의 리스트가 자막으로 오르며 끝난다.

▲ 고민을 많이 했다. 이명박 길거리 인터뷰로 끝내면 공범자들이 모여 있는 첫 장면과 수미쌍관이 이뤄지는 장점은 있으나, 너무 단순해지고 블랙코미디 스타일이 돼버릴 거 같았다. 그보다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란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그러려면 울림이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그들의 고통을 알려주는 게 이후 공영방송을 회복하고,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내는데 유리한 방식이라고 결정했다. 뒤늦게 찾아서 삽입한 구속영장실질심사 장면이 징계리스트가 올라가는 것과 이용마의 독백을 영화적으로 잘 이어주면서 마무리가 됐던 거 같다.

 

 

- MBC 출신 최승호 PD, 이상호 기자 모두 2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방송이 아닌 영화로 접해야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 과거 MBC의 분위기가 자유로웠고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잘 활용해서 스타기자, PD, 아나운서들이 많이 배출됐다. 어느 날 갑자기 활동이 차단됐을 때 ‘방송에서 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영화라는 형식으로 구현하자’는 욕망이 공통적으로 발생한 듯하다. ‘공범자들’을 통해 영화가 훌륭한 저널리즘의 수단임을 다시 한번 강하게 느끼고 있다. TV에서 하기 힘든 지점이 분명히 있다. 이런 영화들이 나오지 않았다면 촛불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이 질타했던 “너네들은 뭘 했느냐”는 질문이 여전했을 거다. 경멸, 무시의 감정이 이제 공영방송의 싸움에 많이 격려해주는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 한편으론 아젠다 세팅과 이슈 파인딩을 추구하며 살아온 기자, PD들이라 기존 한국영화계의 다큐멘터리와 다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듯하다. 이슈가 생생하고, 속도감이 넘치고, 재미나다.

▲ 수습 시절부터 훈련 받아온 거라 분명 그런 게 있을 거다. 특히 우리는 재미없는 건 못 본다. 의미도 중요하나 재미가 없으면 어떻게 의미를 전달하나. 방송 입장에선 사치다. 어째든 시청자들이 흥미를 갖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볼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을 쌓아왔다. 물론 방송과 영화문법이 다르니까 적응하는 게 필요하다. 영화는 훨씬 더 강한 집중과 거기서 오는 깊이가 방송보다 뛰어나다.

 

- 개봉일자가 절묘하다. ‘공범자들’이 공영방송이 변해야하는 이유를 역설하는 것과 맞물려 양대 방송사의 총파업이 이어지는.

▲ 지난해 12월 말부터 시작해서 공범자들을 찾아다니며 촬영하고, 영상자료 분류하고, 구성과 편집을 한꺼번에 했다. 6개월이 걸렸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데 방송에선 짧지 않은 시간이다. 수십년 동안 해온 짓이라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곤 전체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개봉일자를 정했다. ‘공범자들’이 먼저 의식의 저변을 호의적으로 변화시키고 영향을 준 뒤 파업에 들어가는 수순이 좋을 거 같다고 판단했다. 원래 파업 일찍 들어가면 개봉일을 확 당기려고 했다.

 

 

- 영화에는 기약 없는 뻗치기(취재를 위한 잠복행위)를 비롯해 몸싸움, 설전 등이 비일비재하다. 힘든 점은 없었나.

▲ 다 우리가 해온 취재행위 범주 내에 있는 것들이라 아주 힘들진 않았다. ‘자백’에 비해서도 약했다. 물론 그들이 잘 나타나려 하지 않으니까 일정을 알아내고,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몇 달 동안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니까 결국은 만날 수 있게 된다. 안광환씨가 1주일 정도 잠복했으니 제일 오래 걸렸다.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뻗치기를 하면 주변에서 도와주기도 한다. 한 번씩 와서 쓰윽 와서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알려주기도 한다.(웃음)

 

-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지침없이 꿈을 실현해가는 원동력은 무언가.

▲ 프로그램 만드는 걸 굉장히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그걸 통해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고, 역할을 하는 게 나의 소명이라 여긴다. 그런 꿈을 접은 적은 없다. 역설적으로 이명박이 나를 구해준 셈이다. 그가 대통령이 안 되고 정동영씨가 됐다면 난 MBC 간부의 길로 접어들어 프로그램 제작으로부터 멀어졌을 거다. MB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보직에서 바로 잘렸다. 그래서 미국 탐사보도협회 연수를 떠나 공부도 했고, 2009년 하반기부터 현장 PD로 일했다. ‘PD수첩’ 팀장을 하면서 행복한 경험을 했고 비제작부서로 쫓겨났다가 파업 직후 해고됐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나선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시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뉴스타파’로 와 자율적으로 취재, 보도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의 소도에 와있으니 행복한 거 아닌가.

 

- KBS-MBC 총파업이 4일부터 시작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 공영방송이 정상화되는 그날, 재입사해 무너진 MBC를 바로 세우는데 기여하고 싶다. 나의 사회적 효용 면에서 필요한 거 같다. 내 역할이 끝났다 싶으면 다시 나와서 뉴스타파 일도 하고, 영화도 만들고, 또 다른 나의 쓰임새를 찾아야하지 않을까.

 

- 차기작 아이템은 무언가.

▲ 대한민국 사회가 소재가 넘쳐나는 곳이다. 탐사보도 PD, 시사다큐 감독으로선 행복한(?) 공간이다. MBC에 재직할 때 '4대강 사업'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했었다. 취재자료와 영상이 많이 남아있다. 당시에 4대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정치인, 공무원, 학자들 인터뷰 영상이 풍부하다. 그들을 다시 한명 한명 찾아가 인터뷰를 해서 완성하고 싶다. 형태가 방송 프로그램이 될지, 영화가 될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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