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놓은 밤톨 같은 이미지의 윤석원(34)씨 작업실은 홍대 인근 연트럴파크 초입 '챕터2 레지던시'에 자리하고 있다. 여섯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며 추운 계절을 보내고 있는 그의 작업실에는 정밀묘사한 기계장치와 거친 붓질의 모노톤 잠수함 그림들이 1월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 테마는 ‘잠수함’이자 ‘챕터2 레지던시’다. 연남동에 둥지를 틀고난 뒤 영화 ‘다스보트’를 보고 느끼던 잠수함 속 승조원들의 생활과 작업실 환경이 유사하다는 걸 느꼈다. 작업실은 환기가 어려운데다 채광이 미비했고, 소음이라는 방해공작에 시달리게 했다. 이번 작품들은 그 공간이 부여한 긴장감이 낳은 산물인 셈이다.

“이곳에 들어온 지 1년 됐어요. 이제까지 세 군데 레지던시에 있어봤는데, 여기는 핫플레이스인데다 서울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방어 횟집이 있어서 겨울만 되면 소란스러워져요. 죽을 때까지 여기서와 같은 경험은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처음엔 적응을 못해서 화도 내고 했는데 방문객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저도 외출을 할 때 편하더라고요.”

대학 시절, 오래 그림을 그려온 친구들보다도 못 하는 것 같아 그림 그리기에 매달렸다. 대학원에서 서양 회화를 전공했고 현재까지 쭉 붓을 쥐고 있다. 싱글 미술작가로 살아가며, 또 주변의 동료들을 보며 아직까지는 자유롭다는 생각을 한다. 

 

 

“또래 작가들이 결혼하는 걸 볼 때마다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하게 돼요. 가정을 꾸린 뒤 경제적인 책임에 비중을 두는 미술작가들은 작업할 때 판매에 신경 쓸 수밖에 없거든요. 저도 당연히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고 싶지만 당장 가정의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어 다행이에요. 아직까지는 하고싶은 걸 마음껏 해보고 싶어요. 미술작업이 신경을 곤두 세우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예술가에게 자유와 사랑이 양립하기가 녹록하진 않으나 그럼에도 사랑이 고프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 작가로 사는 게 썩 괜찮은 삶인지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좋은 사람이 곁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주면 괜찮을 것만 같다.

나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좋다. ‘혼맥’은 매일 하다시피할 정도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매력은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통제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업을 할 때에도 되도록 혼자 있고 싶어한다.

“예전에 사방이 통유리로 된 곳에서 작업한 적이 있었는데 여간 불편하더라고요. 작업할 때 완전히 거지꼴로 있거든요(웃음). 손에 물감을 잔뜩 묻힌 채 지저분하고 연약한 상태로 있어서… 또 그림 그리다보면 옷이 남아나질 않으니까, 그런 곳은 편하지가 않죠. 그래서인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화가들이 우아하게 그림 그리고 있는 장면만 보면 기분이 이상해요.”

 

 

혼놀은 좋아하지만 혼행과는 거리가 멀다.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많이 할 것 같다는 건 편견이었다. 자유분방하기보다 굉장히 체계적이고 꼼꼼한 편이라고 자부한다.

“혼자 여행을 다녀온 것도 무려 10년 전이에요. 프랑스에 2주 정도 다녀왔고, 그 이후에 일본과 홍콩을 여행했어요. 그것도 일 때문에 2박3일로 짧게. 차가 없고 겁도 많아서인지 여행을 가더라도 계획을 많이 세우게 되더라고요. 무작정 훌쩍 떠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편이에요.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죠. 스케치를 많이 해보고, 계획을 풀로 세워 놓아야 안심해요.”

취미는 글쓰기다. 평소에 글을 많이 쓴다. 특히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많이 올려 소수나마 견고한 독자층이 있다.

“주로 전시나 작품, 정책 비판 글을 썼어요. 남을 트집 잡아서 욕하는 건 쓰기가 쉽더라고요. 지금은 신변잡기 글을 많이 써요. 팟캐스트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적도 있어요. 미술 전시를 욕하는 '미술계 김구라' 컨셉의 팟캐스트는 해보고 싶은 생각을 했어요. 전시회 광고를 받고, 광고를 받으면 그 전시를 또 욕하고! 하하.”

 

 

전시가 한 달 남은 요즘, 가장 바라는 게 있다면 그저 아프지 않는 거다.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난 뒤 친구들, 동료들과 마음껏 술 마시는 날만 기대한다. 멀리 내다본 꿈은 평생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거다. 이 소망을 유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면서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직업적으로 작가나 화가로 불리고 있지만, 그건 상태에 대한 지칭일 뿐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작업을 안하게 되면 그건 뭘까' 생각해 봤어요. 그림을 몇 년이나 안 그리고 있는데도 화가로 부를 수 있을까요? 화가는 진행형일 때 존재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사람들에게 명사가 아닌 형용사나 부사 같은 표현으로 기억되는 작가이고 싶다는 거다. '사과 그리는 작가' '꽃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 작품을 보는 대중이 자신의 느낌을 절로 표현하게 되는 화가이고 싶다.

 

사진 한제훈(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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