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타 박강현이 새해, 청년 명우를 보내고 찰리를 맞이한다.

14일 창작뮤지컬 ‘광화문연가’에서 젊은 날의 명우로 마지막 무대에 선 박강현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오는 31일 개막하는 대형 뮤지컬 ‘킹키부츠’(4월1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의 남자주인공 찰리로 관객과 다시 만난다. 신년 벽두부터 숨 가쁜 행보를 찍어나가는 그를 노크했다.

 

 

‘광화문연가’는 고 이영훈 작곡가의 히트곡을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작곡가와 명콤비를 이뤘던 가수 이문세의 명곡이 포진했다. 박강현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중년의 명우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젊은 날의 명우로 등장한다. 허도영 김성규와 트리플 캐스팅으로 무대를 누볐다.

“철없던 모습을 표현했는데 누구나 그 시절엔 서투르잖아요. 어렸을 때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그 시절의 선택에 대해 후회도 많이 했죠. 이 작품을 하면서 그런 모습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그러면서 사람은 또 배워가는 거니까 저 역시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었고요.”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킹키부츠’는 쇠락해가는 구두공장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듬직한 청년 찰리가 활기 넘치는 트랜스젠더 드랙퀸 롤라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그로부터 영감을 얻어 ‘킹키부츠’를 만들어 성공신화를 이룬다는 이야기다. 팝스타 신디 로퍼의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볼거리로 2014년 초연 이후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 노래, 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포용과 배려의 메시지 등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성형 뮤지컬이에요. 쇼 뮤지컬답게 볼거리가 많고 노래도 너무 좋죠. 전 드라마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요. 자칫 반짝이는 화려한 것에 드라마가 가려질 수 있기에 정말 잘 끌어가고 싶어요. 큰 동선이라든가 세트가 딱 정해져 있으므로 그 안에서 감정을 찾아가는 건 제 몫인 듯해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건 찰리니까. 그의 성장과정이 관객에게 잘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번에도 찰리는 트리플 캐스팅이다. 재주 많은 뮤지컬배우 김호영, SG워너비 출신 이석훈과 함께 찰리를 번갈아가며 소화한다.

“호영이 형은 워낙 잘 하시는 분이라 되게 노련해요. 호영이 형만의 스타일이 있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캐릭터가 나올 거 같아요. 석훈이 형은 찰리의 귀여워 보이는 면이 잘 맞고요. 순수하면서 엉뚱한 느낌이 강하게 나죠. 전 평범한 인물인 듯 하지만 열정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성장하는 모습, 카리스마를 강조하고 싶어요. 일에 대한 열정과 집착의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려고요.(웃음)”

‘광화문연가’에서 명우의 유일한 솔로곡 ‘해바라기’가 가장 좋았다면 ‘킹키부츠’에선 ‘The soul of a man’이 그의 필살기가 될 전망이다. 힘든 상황이 연이어 이어지다가 모두가 떠나고 공장에 혼자 남았을 때 부르는 넘버다.

“내가 모든 걸 망친 듯한 기분에 휩싸여 ‘난 바보야’라고 자책하면서도 현실을 이겨내려는 노래라 매력적이에요. 뭔가에 꽂히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면이 저와 찰리의 비슷한 점인 듯해요. 어떤 것에 몰두할 때 주변을 돌아보는 건 어렵지 않나요? 그런 면에서 찰리에게 동질감을 느껴요.”

 

 

지난 한해 그 누구보다 바빴고, 많은 것들을 성취했다. 변곡점은 JTBC ‘팬텀싱어 시즌2’였다. 초반부터 다양한 장르에 걸맞은 소리와 깨끗하고 힘있는 고음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최종 결승에서 미라클라스(김주택 정필림 한태인 박강현) 팀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 전후로 뮤지컬 ‘인 더 하이츠’의 베니, 연극 ‘나쁜 자석’의 프레이저, 뮤지컬 ‘이블데드’의 애쉬, 서울예술단 가무극 ‘칠서’의 광해 등 고뇌하고 방황하는 청춘을 무서운 에너지로 변주했다.

“돌이켜보면 쉬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바빴어요. 감사할 따름이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프레이저예요. 우정과 의리에 대한 너무 슬픈 극이기도 했고 가장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해준 작품인데 다시 출연한다고 해도 프레이저를 하고 싶어요. 더 밀도 높게. 원래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를)잘 털어내는 성격인데 이 작품은 잔향이 오래 갔어요. 프레이저의 감정에 접점이 많아서인지 이해가 잘 됐어요.”

노래 잘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박강현은 어려서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다. 고교시절 밴드활동을 잠깐 한 것 말고는 체계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다. 대학(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진학해서는 연기를 전공했다. 연극 위주의 커리큘럼이었으나 워낙 뮤지컬에 매력을 느껴 독학으로 노래를 연마했다. 노래한 걸 녹음해서 들어보며 조금씩 고쳐나가다가 ‘팬텀싱어 2’ 때 출전자인 성악가들을 만나 기본기를 많이 듣고 배웠다.

“하나의 도전이란 생각에 출연하게 됐는데 워낙 기초가 탄탄하고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나도 할 수 있다’고 속으로 주문을 많이 걸었죠. 처음엔 ‘예선만 통과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었는데 점점 욕심이 생겨서 ‘4중창은 해봐야 하지 않나’로까지 확장되더라고요.”

 

 

졸업 후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 ‘라이어 타임’(2015)으로 데뷔했다. 이듬해 ‘베어 더 뮤지컬’을 마치고 나서 소속사 더프로액터스에 들어갔다. 4년차 배우인 그는 고향과 다름없는 뮤지컬과 연극은 계속 해나가면서 어렸을 적부터의 꿈인 영화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2018년, 새해에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됐다.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뀐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지난 10년을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재밌었어요. 30대를 새롭게 시작하는 단계인데 더 성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남성적인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나이대란 기쁨도 밀려들고요. 남자로서, 배우로서 더욱 깊어질 수 있는 나이니까.”

배우로서 위시리스트를 꼽자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유다, ‘넥스트 투 노멀’의 게이브다. 아직까지는 자신이 어디에 잘 맞는지는 모른다. 그러므로 가리는 것 없이 이곳저곳을 탐사하며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게 무서운 팬텀싱어의 신년 포부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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