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궁금합니다. 열 개의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싱글이라면 누구나 무엇이든 픽업할 수 있는 Single’s 10 Pick.


이원빈 (25·영화수입사 마케팅 직원)

 

1. 차가운 이불

차가운 이불이라는 호칭은 내가 대여섯 살 무렵 만들어낸 나와 할머니, 고모, 엄마 사이의 호칭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더우면 잠을 설치곤 했던 나에게 종아리에 닿는 시원한 감촉이 참 좋았던 차가운 이불은 수면제와도 같았다. 물론 잠을 잘 잘 수 있던 게 이불덕분인지 아님 혹 감기라도 걸릴까 턱 끝까지 이불을 덮어주시던 할머니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차가운 이불은 나에게 보고싶은 할머니이자 침대 속에서라도 모든 고민과 걱정을 잊게 해주는 나만의 *뉴럴라이저. (*맨인블랙 속 기억제거장치) 지금은 너무 닳고 해져 ‘그만 좀 버리라’는 소리를 듣는 처지가 되었지만 내 머리 만한 구멍이 난다 해도 버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2. 매운 음식

나의 길티플레져, 매운 음식. 위 건강을 해치고 즐거움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고통을 유발하는데도 매일의 귀갓길에 생각이 난다. 어느새 배송요청란에 ‘매운맛보다 더 맵게요’를 적고있는 손가락을 오늘도 역시나 막을 자신이 없다. 소울푸드는 떡볶이.

 

3. 데미안과 조르바

데미안(더 정확히는 싱클레어..)과 조르바는 나의 정신적 2차성징을 함께한 소중한 이들이다. 이십 대 초반에 이 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스스로를 의심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지 않았을까?

 

4. 이야기

나의 이야기 사랑은 초등학생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인터넷 소설에 푹 빠져 줄공책에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던 것이 후에는 인터넷 연재가 되고, 후에는 (주변 친구들에게 마저 비밀로 했지만) 소박한 팬카페가 되었다. 글을 업로드하고 독자들의 댓글이 달리기만을 기다리던 그 순간이 얼마나 설레던지. 지금은 이야기에 대한 설렘이 ‘영화’에 와있다.

 

5. 향

100% 보장한다는 말은 지키기 어렵기에 지양하는 표현 중 하나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기분만큼은 100%의 확률로 좋게 하는 것이 한가지 있다. 내가 좋아하는 향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6. 시골

나의 유년기는 엄청난 대가족과 함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 고모, 큰엄마 큰아빠, 친척 언니, 오빠들은 물론 근처에 사는 많은 사촌들과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앞집 언니들과 자전거를 타다 논두렁에 빠지기도 하고, 메뚜기잡기,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등을 하다가 담장 넘어 들려오는 “밥먹어라!” 소리에 집으로 달려가 따뜻한 밥을 먹은 후 웃방에 길게 누워 티비를 시청하다 잠들곤 했다. 이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안 계실뿐더러 많은 것이 달라져버렸지만 여전히 낡고 허름한 시골집은 내 마음의 안식처다. 또 시골에서 보낸 유년기는 여전히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5살 무렵 시골집 앞마당.

 

7. 우주

나는 ‘덕질’에 대한 지구력이 부족하다. 전문성이 중시되는 현대의 젊은이로서 덕질에 소질이 없다는 점은 스스로 참 안타깝다. 그런 의미에서 난 우주가 좋다. 처음엔 막연히 그 끝을 몰라서, 또 그 안에서는 너도 나도 참 보잘것없어서 좋았다. 하지만 꾸준히 질리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결정적 이유는 아무리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공부를 해도 꾸준히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이는 모습 뒤에 숨겨진 비밀을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짐작과 편견 없는 호감은 나 같은 사람도 폰케이스, 귀걸이, 티셔츠, 베개 등의 굿즈를 사 모을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된다

 

8. 알콜

아이러니하게도 2018년 목표 중 하나는 절주고, 스무 살때부터 꿈꿔오던 인생 장기 목표 중 하나는 <나혼자산다>의 나래바처럼 나만의 바를 집안에 들여놓는 것이다.

 

9. 친구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미묘하게 다르듯 오늘의 관계와 내일의 관계 또한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당장 지금 이순간 정말 사랑해 친구들. 내 일상을 다양한 맛으로 만들어주는 소중한 존재들!

 

10. 플래너를 빙자한 다이어리

나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장문의 일기를 매일 써내려 가는 것은 대단한 성실함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 정도의 성실함이 없는 내가 고안해낸 방법이 바로 플래너를 빙자한 메모형 일기장이다. 줄글로 하루 동안 일어난 일과 느낀 감정을 적는 대신 누구를 만나 어디서 뭘 먹었는지, 혼자 집에서 뒹굴거렸다면 무엇을 먹으며 어떤 영화를 봤는지 정도라도 간단하게 적는다.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나 같은 사람도 무려 햇수로 10년째 실천 중이다. 올해는 드디어 10번 째 다이어리를 구입한 해다.

하루의 일을 메모하는 이 간단한 행위가 아주 쏠쏠한 재미를 주고 있다. 2014년 5월 2일 수연언니를 만나러 부평으로 가 애견도 출입 가능한 식당을 찾느라 거의 한시간을 헤맨 기억은 우리 사이에 작은 재미를 만들어 주니까. 물론 작년과 재작년엔 플래너를 각각 한 차례 씩 잃어버린 후 새로 구매하였으나 그 뼈아픈 경험은 플래너를 잃어버려도 나는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어 한편 고맙다. 나도 돌아가신 할아버지처럼 기력이 다할 때까지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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