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팬들에게 추창민(52) 감독의 이름을 꽤 특별하다. ‘마파도’(2005),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 뿐 아니라 천만 관객을 돌파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까지 숱한 작품에서 웃음과 감동을 전달하며 많은 이들의 ‘최애’ 감독이 됐다. 그리고 꼬박 6년 만에 영화 ‘7년의 밤’으로 돌아온 그는 더 맛있게 익은 스토리로 관객들을 매혹한다.

  

영화 ‘7년의 밤’은 한순간의 우발적 살인으로 모든 걸 잃게 된 남자 최현수(류승룡)와 그로 인해 딸을 잃고 복수를 계획한 남자 오영제(장동건)의 7년 전의 진실과 그 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정유정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워낙 큰 사랑을 받았던 소설이기에 이를 각색하는 데에는 큰 부담감이 뒤따랐다. 추 감독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부담감을 토로했다.

“사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끝나고, 제작자분이 ‘7년의 밤’을 추천해주셨어요. 영화화하면 재밌겠다면서요. 그래서 애초에 영화로 바꿔보겠다는 목적을 가지고서 원작을 처음 만났어요.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머릿속에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차더라고요. 소설이 정말 재밌잖아요. 하지만 영화로 바꾸기에는 굉장히 어려웠어요.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시점을 하나로 합쳐야하는 것부터, 절대 옹호할 수 없는 캐릭터 표현까지... 제 깜냥이 아닌 것 같았죠.”

책을 읽고서 영화화 포기 직전까지 갔던 추창민 감독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책에 손이 갔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원작의 힘에 완전히 매료된 것일 수도, 도전정신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운명처럼 끌렸던 ‘7년의 밤’의 메가폰을 들었다. 하지만 원작을 무작정 따라가기 보단, 자신의 독창적 해석을 가미했다. ‘추창민’이란 브랜드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많은 분들이 원작에서 좋아하시는 부분이 있지요.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 복수극, 대결 등이요. 하지만 저는 정유정 작가님이 ‘작가의 말’에 쓰신 ‘눈으로 보지 못한 이면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문장에 눈길이 가더군요. 이게 각색의 시작이었어요. 최현수나 오영제 뿐 아니라 각자 캐릭터들에겐 비밀이 있어요. 모두가 악(惡)해요. 그래서 저는 이 악을 단순히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 본류를 찾아가보자고 생각을 했어요. 영화 ‘7년의 밤’은 그런 작품입니다. 근원을 찾는 거죠.”

 

추창민 감독의 색깔이 들어간 ‘7년의 밤’은 참 깊은 영화다. 하지만 원작의 스릴러 색채를 기대하고 극장에 찾은 관객들은 조금 옅어진 스릴러에 아쉬움을 말하기도 한다. 이에 추 감독은 관객들에게 당부의 말을 살짝 전했다.

“원작 팬분들은 소설에서 꽂히는 포인트가 하나씩 있으시더군요.(웃음) 어떤 분은 현수의, 또 어떤 분들은 영제의, 또 아내의 이야기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다양하세요. 워낙 소설이 방대하기에 취향도 여러갈래로 나뉘는 거지요. 그걸 하나로 모은다는 것 자체가 러닝타임이 정해진 영화에선 불가능에 가까워요. 스릴러가 옅어서 배신감을 느끼실지 모르지만, 영화이야기 이면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찾아보시길 바라요.”

원작에 가미된 감독의 해석. 영화화를 한다면 꼭 필요한 작업이지만, 워낙 큰 아우라를 가진 원작을 집필한 정유정 작가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말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추 감독은 이 질문에 웃으며 대답을 이어갔다.

“개봉하기 전까지, 작가님을 한두 번 정도밖에 못 뵀어요. 그것도 딱 인사만 하는 수준으로요. ‘어떻게 만들 거다’라는 말을 해본 적은 없어요.(웃음) 작가님도 영화를 제2의 창작물이라고 생각하셔서, 따로 ‘어떻게 해주세요’라고 말씀을 주신적도 없으세요. 그래서 결과물을 어떻게 보실까 걱정은 됐죠.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좋게 봐주셨어요. 참 감사한 일이지요.”

 

추창민 감독은 멋진 영화로 탄생한 ‘7년의 밤’에 대해 만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공은 배우들에게 돌렸다. 특히 이번 작품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완벽히 변신한 배우들이 많다. 악역 변신을 처음 시도한 장동건부터 코믹 이미지를 벗은 송새벽까지, 추 감독은 “왜 하필 그 배우들이었을까?”에 대한 질문에 멋진 답변을 내놨다.

“배우들에게 이미지가 중요하죠. 그런데 ‘7년의 밤’은 겉으로 보이는 스릴러 장르 이면의 메시지를 찾는 영화예요. 그래서 캐릭터 구성도 배우들의 이미지 속 모습을 꺼내보고 싶었어요. 장동건이란 배우는 ‘젠틀남’이잖아요. 딱 봐도.(웃음) 거기다가 오영제라는 엘리트 사이코패스를 맡는다 할 때 딱 떠오르는 관습적 느낌이 있죠. 그걸 딱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M자탈모 분장도 시켰고요.(웃음) 송새벽 씨도 마찬가지였어요. 최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빼고 ‘저런 면도 있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999년 코미디 드라마 ‘행복한 장의사’의 각본부터, 연출을 맡았던 ‘마파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까지. 추창민 감독의 색깔은 확고했다. 재밌고 훈훈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이미지. 하지만 이번엔 그도 자신의 이면에 자리한 묵직한 색을 꺼내보였다. 이미지 변신, 완전 성공이다.

“흥행에 성공하면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광해’로 큰 성공을 거둔 후에, 좀 다른 방향에 서보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 작품을 아트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제가 하고 싶은 걸 맘껏 펼쳐 보이는 자유로운 영화를 해보고 싶었지요. 물론, 상업영화의 색을 잃지 않고서요. 저는 상업 영화감독이니까요. 제 존재감보다도, 관객분들과의 소통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이 소통이라는 건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난 후의 일이겠지요.”

 

천만영화 ‘광해’ 이후 꼬박 6년 만에 돌아온 추창민 감독이기에 ‘7년의 밤’은 꽤나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 가슴에 아로새겨진 이 작품의 의미를 조심스레 드러냈다.

“돌아보면 참 힘든 프로덕션이었습니다. 촬영, 조명, 미술감독들이 신인이었어요. 경험이 적은데도, 노력은 정말 베테랑 이상이었죠. 그들의 지지와 성실함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영화였을 거예요. 참 감사해요.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는 제게 ‘소통’을 하는 방식이에요. 마치 가수가 음악으로 소통하듯, 저도 영화로.(웃음) 전작을 무척 사랑해주셔서 부담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번엔 새로운 목소리를 내봤으니, 또 다음번엔 또 다른 새로움으로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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