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좌배석 박차오름(고아라 분)의 등장이후 실상 민사44부에서 가장 골치를 썩는 건 한세상(성동일 분)이다. 지방대 출신으로 학연도, 지연도 없는 그를 법원 내에서도 경시하지 못하는 건 한세상이 ‘출세를 포기한 판사’이기 때문. 한세상은 경직된 법원에서 수석부장(안내상 분)에게 유일하게 쓴소리를 하는 인물이다. 자리보존은 물론 위를 바라보는 배곤대(이원종 분), 성공충(차순배 분)과는 대립선상에 있다.
 

하지만 이런 한세상에게도 박차오름은 참 버거운 인물이다. 박차오름의 날선 혀는 민사44부의 수장인 자신에게도 가끔 비수가 되어 꽂히기 때문. 극 초반에는 이런 박차오름과 한세상의 대립이 부각되기도 했었다.

"그 여학생도 문제야. 그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부장님, 짧은 치마를 입은 피해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상한 짓을 하는 추행범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말대꾸야. 여학생이면 여학생답게 조신하게 입고 다녀야지.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야. 여자로 만들어지는 거지. 노력을 해야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거야."

일련의 대사들로 한세상은 남성중심적 사고를 나타냈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점을 지적하는 한세상에게 박차오름은 “법관 윤리강령에 치마길이 규정이 있나요?”라고 반박했다. 이후에도 한세상은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그릇된 관습들과 작별하는 게 결코 쉬워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세상의 변화는 결국 그의 아주 작은 정의에서 비롯됐다. 박차오름이 약자의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을 흘리는 방법으로 공감을 표현한다면, 한세상은 불의에 때로 버럭 소리를 지르는 감정적인 인간형이었다. 전형적인 꼰대임과 동시에 정의와 불의에 대한 소신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임바른(김명수 분), 박차오름을 통해 결국 변화를 받아들이는 그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세상은 성공충이 박차오름에 대한 앙심을 품고 징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데 분노했다. 그리고 마치 이 사회의 상사들에 대한 대사를 던졌다.
 

 

“후배들한테 부끄럽지도 않소? 조직을 위한다는 핑계로 젊은 후배들을 희생시켜? 당신은 뭘 희생했어? 높은 곳에 우아하게 앉아서 점잖은 척만 하면 그게 다야?”

젊은 세대를 향해 ‘책임감 없다’, ‘노력이 없다’고 질타하면서도 정작 기형적인 사회를 만들어온데 일조한 책임을 지지 않는 기성에 대한 외침으로 다가왔다. ‘미스 함무라비’를 집필한 문유석 판사는 2017년 중앙일보에 기고한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을 통해 상사로서, 그리고 상사를 둔 후배판사로서 따끔한 질책을 남기기도 했다. 자기성찰을 통한 기성세대의 노력을 드라마에 그려내면서 한세상은 청춘에게 먼저 손내미는 ‘어른’으로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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