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히딩크’ 박항서 감독이 19일 일본과의 3차전에서 승리, 조별리그 3전 전승에 남자축구 D조 1위로 16강 진출을 이루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초반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말레이시아와의 E조 조별리그 2차전 1대2 패배로 ‘반둥 쇼크’에 빠진 한국 U-23 대표팀의 안타까운 상황과 베트남의 3전 전승이 대비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박항서 감독은 축구 팬들에게 거의 20년 전부터 친숙한 존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호’의 일원이었던 그는 2000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사령탑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기 전부터 코치로 한국 대표팀을 단련시켰다.

이후 한국 U-23 대표팀과 국내 프로팀을 두루 맡으며 감독 경력을 이어갔고, 지난해 베트남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쌀딩크’, ‘박항서 매직’ 등 수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박항서 감독의 축구 인생을 몇 가지 포인트로 짚어본다.

 

19일 일본전에서 1대0 승리를 거둔 직후의 박항서 감독. 사진=연합뉴스

 

★선수시절, 작지만 근성 있던 미드필더 

박항서 감독의 키는 166cm에 불과하다. 커다란 선수들이 즐비한 그라운드에서 눈에 띄게 작은 키를 가진 미드필더였지만, 끈질긴 압박 수비로 상대를 괴롭히는 근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선수 시절 그리 주목받는 스타는 아니었다. 이는 선수 생활이 짧기 때문이기도 하다. 1981년 제일은행 축구단에 입단하며 데뷔한 박항서는 군 복무 이후 럭키금성 황소에서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뛰고 7년 간의 길지 않은 선수 생활을 마쳤다. 

 

2001년 1월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있는 박항서 코치. 사진=연합뉴스

 

★’히딩크호’ 탑승과 영광의 순간

은퇴 뒤 코치로 경력을 쌓고 있던 박항서 감독이 대중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 2000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사령탑을 맡기로 결정된 뒤 그가 본격 입국할 때까지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박항서는 그 시기에 치러진 한일 축구 정기전에서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스탠드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이후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맡았던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이 첫 골을 넣고 나서 달려가 품에 안겼던 코치로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팀과 박항서 감독. 사진=연합뉴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동메달과 경질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16년 전, 아시안게임 무대였다. ‘히딩크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생애 첫 감독직을 맡은 박항서는 지금도 회자되는 올스타 멤버들을 데리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출격했다.

당시 부산아시안게임은 한일월드컵 이후 약 3개월 만에 홈에서 열린 데다, 박지성 이천수 이영표 이운재 등 월드컵 태극전사들과 이동국 김용대 김두현 등 스타들로 호화로운 선수 명단을 자랑했다. 그러나 준결승 상대였던 이란에 승부차기 접전 끝에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고, 3-4위전에선 태국을 누르며 동메달을 따냈지만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워낙 컸던 만큼 감독직을 떠나야 했다. 

 

2005년 8월 K-리그 OB 올스타전에서 오랜만에 직접 뛰는 박항서 감독. 사진=연합뉴스

 

★K-리그 감독에서 베트남 히딩크로

이후에는 박항서 감독의 모습을 K-리그에서 볼 수 있었다. 2005년 경남 FC 초대 감독으로 취임해 2007년에는 팀을 4위까지 올려놨다. 이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허정무가 맡고 있던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되어 2010년까지 일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상주 상무 감독으로서 군 복무 중인 선수들을 지휘했다.

그리고 지난해인 2017년 9월 베트남의 제의를 받아 성인 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겸임하게 됐다. 당시 그가 “쌀국수 대신 우유”를 주장하며 단백질 중심의 식단으로 선수들의 먹을 것부터 교체하고, 선수들에게 식사 중에는 휴대폰 사용을 금지했다는 일화가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쌀딩크’라는 별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올해 1월 AFC U-23 선수권대회 준우승 이후 베트남으로 금의환향하는 박항서 감독. 사진=연합뉴스

 

★진가 나오는 ’박항서 매직’, AFC U-23 대회

‘박항서 매직’의 진가는 올해 초 2018 AFC U-23 선수권대회에서부터 발휘됐다. 조별리그에서 한국, 호주, 시리아와 같은 조가 된 베트남은 최약체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차전에서 한국에 1대2로 지고도 2차전에서 호주를 꺾은 데다 시리아와 3차전에선 무승부를 거두며 한국에 이어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전 상대였던 이라크에는 3대3 무승부와 승부차기 끝에 5-3으로 승리, 4강전에서는 카타르에 2대2 무승부와 승부차기 4-3 승리로 대망의 결승 진출을 일궜다.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1대2로 져 준우승했지만, ‘박항서 매직’ 열풍 속에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AFC U-23 대회의 열풍을 이어가는 무대가 바로 지금 열리고 있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다. 애초에 조별리그 통과를 목표로 내세웠던 박항서 감독은 조별리그 3전 전승,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특히 승점과 골득실이 모두 같았던 일본과의 3차전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1대0 승리를 거둔 19일 경기는 ‘박항서 매직’을 더욱 사랑받게 했다.

베트남 ‘박항서호’는 조 1위를 확정지으며 23일 B, E, F조 3위 중 한 팀과 16강전을 치르게 된다. 한국과의 16강전은 무산됐지만, 한국과 베트남은 토너먼트에서 계속 위로 올라갈수록 결국 만나게 돼 있어 흥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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