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골프장 직원 성추행 사건이 재조명됐다.

1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기억과 조작의 경계-전직 검찰총장 성추행 의혹사건’을 다뤘다. 2013년 6월 어느 날, 밤 9시가 넘을 무렵 포천 골프장 여직원 기숙사 문을 두드린 남자는 ‘총장’이라 불리던 회사의 대표 중 한 사람이었다. 같이 사는 민정(가명)씨가 샤워 중인 터라 수진(가명)씨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자 총장은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왔고 잠시 후 과장이 따라 들어왔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계속 자신을 찾는 총장 때문에 밖으로 나간 민정씨를 총장은 자신의 옆에 앉혔다.

 

 

민정씨는 "젖은 머리와 팔을 만지고 껴안고...맨살이 자꾸 닿아 계속 뺐더니 자기가 싫으냐면서 애인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뽀뽀까지 요구하는 등 손녀뻘인 직원들에게 부적절한 말과 행동이었다. 민정씨가 거세게 항의한 다음에야 과장이 총장을 데리고 나갔고, 총장은 민정씨와 수진씨에게 5만원씩 주고 갔다고 한다.

민정씨는 결국 첫 직장이자 2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2014년 11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보도됐다.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20대 골프장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으로 신문지상에 이름을 올린 전직 검찰총장. 신총장과 민정씨 이야기였다. 그녀는 왜 1년6개월이 지나 갑자기 고소를 결심했을까.

민정씨는 "처음부터 고소할 생각은 없었는데 포천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노조 설립을 준비 하던 전 회사 사람들이 당시 성추문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더니 1년이나 지났는데 왜 설명해줘야 하는지 모르겠고, 나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다 아니까 물어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민정씨는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뒤늦게 당시 상황을 고백했고 아버지는 큰 충격에 빠졌다. 민정씨 아버지는 골프장에 찾아가 항의했고 신 전 총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아버지는 "사과만 받으면 할 도리는 다 한 거라 생각했다. 신승남이 우리한테 '네깟 것들한테 내가 왜 사과를 해?'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1년 뒤 성추행 피해자였던 민정씨는 가해자로 뒤바뀌었다. 민정씨의 고소에 신 전 총장이 민정씨와 아버지를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민정씨 부녀의 성추행 고소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내렸다. 민정씨는 사건이 2013년 6월22일에 발생했다 주장했다. 2013년 6월19일 친고죄가 폐지되며 고소 방법과 고소 기간이 달라졌다. 6월 22일이면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지만 경찰은 사건 발생 시기가 6월19일 이전이라 판단한 것이다.

신승남 전 총장이 민정씨가 날짜까지 허위로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신승남 전 총장 운전기사의 운행 기록에 그는 22일 밤 골프장이 없는 것이 확인됐다. 22일이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는 당시 골프장에 있던 이사의 기록이다. 민정씨에게 항의를 받았던 바로 그 이사는 "6월22일 광주로 간 게 기억난다"며 23일 광주에서 사용한 카드 내역서를 공개했다. 사건의 날짜가 6월 22일이 아니라는 증거들이다.

민정씨는 "언제 있었는지 나도 정확히 날짜를 모른다. 아예 잊고 사려고 했고 1년 전 일을 어떻게 날짜까지 기억하나"라고 말했다. 민정씨의 골프장 퇴사가 6월29일인데 그 일 이후 일주일 쯤 후 퇴사한 기억 때문에 22일쯤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날짜가 특정이 돼야 고소장이 접수가 된다는 아버지가 22일을 말했다고 했다.

민정씨 아버지는 "운전기사가 자기 운행일지에 기록된 날짜가 6월 22일로 돼있다고 했다. 운행일지 적는 사람이 22일로 돼있다고 하니까"고 말했다. 운전기사는 민정씨 아버지가 아닌 검찰 수사관 출신 법무사이자 신 전 총장의 고향후배 배씨에게 이를 이야기 했다며 "21일이라고 말했는데 배씨가 22일로 한거다"고 말했다.

 

 

배씨는 날짜 때문에 신 전 총장에게 고소당해 법적 분쟁 중이다. 그의 죄명은 무고만이 아닌 공갈미수다. 신 전 총장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검찰 수사관 시절 그의 밑에서 일했던 배씨는 신 전 총장과 함께 골프 연습장을 운영했다. 운영권을 두고 분쟁이 벌어졌고 폭력사태까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배씨가 민정씨를 부추겨 이 사건을 만들었다는 혐의다. 배씨는 "내가 관여하지 말아야 될 일에 고소장 써준 게 잘못이다. 난 재산 다 날리고 인생이 엉망진창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 사건은 성추행과 상관없는 날짜조작 진실게임으로 바뀌었다. 민정씨와 아버지는 배씨의 조언 때문에, 배씨는 차기사가 말했기 때문에, 차기사는 배씨가 잘못 들었기 때문에 날짜가 22일이 됐다고 주장한다. 신승남 전 총장은 이들이 날짜를 조작해 자신을 공경에 빠뜨렸다며 민정씨와 아버지, 배씨, 운전기사와 당시 골프장 대표이사를 고소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날짜가 아니라 성추행 여부다. 경찰이 날짜 수사를 시작한 이유 역시 성추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공소권이 있는지를 따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승남 전 총장의 주장대로 날짜를 조작했다는 것은 원래 날짜가 있는데 다른 날짜를 꾸며냈다는 것이다. 원래 날짜가 언제인지는 밝혀진 것일까.

검찰은 사건 날짜를 5월22일로 특정했다. 당시 직원들도 모두가 6월을 말했는데 사건 날짜가 유일하게 5월이라 주장한 사람은 신 전 총장이다. 신승남 전 총장은 "내가 무죄로 끝났다. 22일이 아니고 21일이다"고 말했다. 반면 수진씨는 6월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6월 21일 역시 사건 날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날 수진씨가 6월21일 휴무였다고 기록된 근무표 때문이었다. 골프장 관계자는 "그 근태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근무표가 부정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 민정씨와 아버지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민정씨의 주장이 허위사실이라 단정하기 어렵고 근무표 내용이 반드시 실제 근무 내용과 일치한다 단정할 수 없으며 사건 발생이 2013년 6월 하순경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검찰은 항소했다.

 

 

당시 사건 수사 기록을 살펴보던 제작진은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됐다. 민정씨가 고소장을 접수한 후 ‘공소권 없음’ 결정을 받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조사를 받았지만 정작 피의자였던 신승남 전 총장은 한차례도 조사 받은 기록이 없는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왜 신승남 전 총장을 조사하지 않았을까.

당시 수사를 주도했던 경찰은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민정씨 변호사를 찾기 위해 도움을 줬던 친구는 "다들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냐는 식으로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상대가 전직 검찰총장이고,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 태도가 달랐다. 개입하지 말라, 미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고 말했다.

민정씨는 결국 재판이 시작된 후에야 지금의 변호인단을 만날 수 있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그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공소장을 받아든 후배 검사가 어떤 생각을 하겠냐. 그 자체가 영향력을 행사한 거다"고 말했다. 신승남 전 총장은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의 인터뷰 요청에 "자료를 준 게 누구냐. 내가 대충 알고 있는데"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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