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4주기를 맞아 'MBC스페셜'이 참사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2부작을 선보인 가운데 지난 월요일 방송된 '416 합창단'에 이어 희생자들을 바다 속에서 수습해 올렸던 민간잠수사들의 4년 후 모습을 담은 '로그북-세월호 잠수사들의 일기'가 23일 오후 11시10분 전파를 탔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를 대신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희생자 수습에 나섰던 베테랑 잠수사 황병주(58), 강유성(48), 한재명(43), 백인탁(44)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목숨 걸고 맹골수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4년 후, 지금 그들의 삶에 남은 것은 트라우마 그리고 2014년 4월 그날부터 40여 일간 기록된 잠수일지 ‘로그북’ 뿐이다.

70여일 만에 수습된 희생자 293명. 잠수사들은 칠흑같이 깜깜한 배 안에서 희생자들을 상처 없이 돌려보내기 위해 몸이 부서질 듯한 조류를 버티며 한 명씩 보듬어 올렸다. 물 속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기 일쑤였다. 꿈속에서조차 아이들의 뒤엉킨 유해가 떠올랐고 차가운 아이들의 발을 끌어안았다.

수색 초기엔 지원 부족으로 어선에서 밥을 얻어먹고 갑판 위 노숙을 하면서도 목숨을 건 수색에 나섰다. 교대 시간을 줄이기 잠수병조차 무시한 채 고속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 곧장 선상 감압장치에 들어가는 무리를 반복했다.

하지만 동료 잠수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라며 기소되는가 하면 당시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으로부터 “일당 100만원을 받고, 시체 한구를 인양하면 500만원을 받는다”는 억장이 무너지는 모함, “물때가 좋은 데도 잠수하지 않고 물속에서 시간만 때운다”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결국 해경은 돌연 민간잠수사 전원 철수를 통보하고 잠수사들은 말없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들 중 2명은 잠수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고, 1명은 비닐하우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상당수는 트라우마와 질병으로 생업을 놓았으나 산업재해 적용을 받지 못했고, 대다수가 정부의 보상에서도 제외됐다.

그들의 기억은 여전히 46m 바다 속에 갇혀있다. 황병주는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당시 현장에서 신장이 망가진 그는 일주일에 3차례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강유성은 밤이면 잠에 들지 못해 집안을 서성인다. 그는 선잠이 들다가도 딸이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허공에다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른다. 한재명의 가방 안에는 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가 있다. 잠수 일을 접고 생선을 팔기 시작한 백인탁은 하루 열 두 번씩 집에 전화를 하며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지나칠 정도로 걱정을 한다.

죽음의 기억에 갇힌 잠수사들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남들보다 한 걸음 더 용기를 냈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불면, 죽음 충동 등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한다. 이들은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집단 상담을 시작하고 사회에서 겉돌 수밖에 없었던 지난 4년을 고백했다.

 

 

정혜신 정신과 의사는 이들을 상담하며 “매일같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들면서 그 경계가 해체돼 버렸다. 의학용어로 ‘죽음 각인’이라는 트라우마가 생겨버린 것”이라며 이들의 아픔을 진단하며 아프게 공감했다.

2017년 11월24일 세월호 2기 특별조사위원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국회를 힘겹게 통과했지만 민간잠수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세월호피해지원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자유한국당 의원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도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방송 말미,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이 마련한 뜨개질 전시회에 초대받아 창원에서 서울로 먼 길을 달려온 몇 명의 잠수사들과 어머니들. 이 가운데 한 어머니가 “이 중 어떤 분이 저희 아이를 품고 나오셨을텐데”라고 말하자마자 잠수사들은 눈물을 와락 쏟아냈다. 같이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는 “울게 해드려서 너무 미안하다. 늘 고마웠다”며 허리를 숙였다.

바다에서 조용히 늙어가고 싶었던 이들, 국가재난이 발생하자 가족과 생업을 뒤로 한 채 천길 만길 심해로 뛰어들었던 이들을 우리 사회는 망각했고, 국가는 외면했다.

 

사진= MBC스페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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