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 직원이었던 고(故) 염호석 시신 탈취 사건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26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주목한 사건은 2014년 5월17일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에서 시작됐다. 며칠째 언덕 위에 주차돼 있던 차 안에서는 한 남자의 사체와 더불어 소주와 타다만 번개탄, 4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 내렸다. 사건 담당 형사는 "강릉지청 검사가 영안실까지 두번인가를 왔다"며 검사가 남자의 죽음을 신경 썼다고 밝혔다.

 

 

숨진 남자는 경남 양산에 살고 있던 34살 염호석씨였다. 다음날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의 장례식장에 방패를 든 경찰들이 몰려왔다. 당시 현장에 있던 류하경 변호사는 "경찰 250~300명 정도가 무장한 상태로 들어와 있더라. 출동 사유를 밝히는 경찰이 아무도 없었다"고 밝혔다.

장례식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찰은 조문객들을 한쪽으로 밀어냈을 뿐만 아니라 최루액을 뿌렸다. 납득하기 힘들만큼 강압적으로 현장을 진압한 이유는 운구차 한대가 장례식장을 빠져나간 뒤 드러났다. 운구차가 나간 뒤 고 염호석 씨 시신이 사라졌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유족이 원하면 내줄 수밖에 없다. 아버님이 다 사인하셨다"고 밝혔다.

고인의 동료는 아버지가 이상하게도 아들의 장례가 끝난 뒤 여러 차례 전화번호를 바꾸고 피해 다닌다고 했다. 염호석 씨가 숨진 지 4년, 아버지가 들고 사라진 유골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날 서둘러 장례식장을 빠져나간 아버지는 고 염호석 씨 동료들에게 부산 구서동 소재 한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겠다고 했다. 정작 서울에서 시신이 온다는 연락을 받은 곳은 금사동 장례식장이었다. 일부러 조문객을 따돌리기라도 하듯 돌던 운구차량은 결국 구서동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안치실을 찾아간 고인의 직장 동료는 시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머니와 동료들은 인근 화장장을 수소문하며 시신을 찾으러 다녔고, 그의 화장이 20일 오전 경상남도 밀양에서 이뤄졌음을 알아냈다. 분골실은 아버지만 들어갈 수 있었고 350명의 경찰이 현장을 통제한 채 최루액을 뿌리며 항의하는 이들을 강제진압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던 고 염호석씨는 숨지기 전 부모님과 동료에게 유서를 남겼다. 시신이 발견되면 가족이 아닌 노조 소속 동료들에게 장례절차를 맡긴다는 마지막 부탁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몇차례 외출을 한 후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어렵사리 만난 아버지 염씨는 아들의 장례식 때 이뤄졌던 비밀스러운 거래에 대해 밝혔다. 본사의 최전무라고 소개한 남자는 염씨에게 위로금조로 6억원을 주겠다면서 가족장을 하라고 했다. 시신 없이 빈소를 차려준 직원이 모든 작전을 짰다고 한다.

고 염호석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왜 이런 상황으로 이어졌을까. 고인은 끼니를 굶어가며 일했지만 기본급은 120만원에 불과했다. 일이 없어 주유소 아르바이트, 대리운전까지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통장에 3600원을 남기고 떠난 그는 3월에 70여 만원을 받았다.

2013년 7월14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고인 역시 동료들과 조합에 가입했다. 이상한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일감이 거의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삼성이 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기획한 치밀한 작전이라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을 수사하던 중 6000여 건의 노조와해 계획 문건이 발견됐다. 문건에는 개인취향, 사내지인, 자산, 주량 등을 파일링해 자료를 수집하고 노조가 만들어지면 위법사항에 대해 고소 고발을 하고 경제적 압박을 하라고 돼 있다. 노조가 만들어져도 당황하지 말고 노조 와해를 조기에 못 시킨다면 고사시켜야 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지난 2013년 고 최종범씨는 "삼성전자 서비스를 다니며 힘들고 배고프다"는 내용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들은 수리기사들의 잇따른 추모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삼성이 고 염호석씨 가족장을 서두른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방송 말미에 고 염호석씨 아버지는 "삼성 직원이라고 하는 놈들은 돈을 줬기 때문에 고맙게 생각한다. 근데 요새 뉴스 보면 나쁘긴 나쁘더라"고 말했다. 아들의 유언을 지켜주지 못한 대신 유골은 정동진에 뿌려줬다고 덧붙였다.

삼성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된다"고 말해왔다. 오랫동안 ‘무노조 왕국’ 삼성은 헌법상 정당한 권리가 행사되지 않도록 일사불란하게 ‘작전’을 짜온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를 인정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한다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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