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웨이 위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최고의 모델로 군림했던 강승현(31)이 스크린에 도전장을 던졌다. 올해만 벌써 ‘챔피언’(감독 김용완), ‘독전’(감독 이해영) 두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신인배우로서 열의를 내비치고 있다.

 

무더운 날씨의 초여름날,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강승현을 만났다. 세계적 모델이라는 타이틀에 막연히 당돌한 사람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막상 실제로 마주한 그는 상당히 겸손한 신인배우의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지금의 반응이 마냥 신기할 뿐”이라는 소감에서는 풋풋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강승현은 지난 2008년 포드 세계 수퍼모델 대회에서 아시아계 최초 1위를 차지하면서 전 세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후 전 세계의 러브콜을 받는 톱모델로 입지를 탄탄히 굳혀왔다. 많은 이들의 주목이 익숙할 법도 했지만, “‘독전’을 통해 받게 된 배우로서의 주목은 아직 익숙지 않다”고 털어놨다.

“최근에 450만 관객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새삼스레 제가 참 좋은 영화에 참여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제 주변에도 ‘독전’을 본 분들이 많아요. ‘잘 봤다’는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신기해요. 아직도 얼떨떨하네요.”

주변의 뜨거운 관심이 이어지고 있지만, 강승현은 어쩐 일인지 스크린 속 본인의 연기하는 모습을 "쳐다보기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아직 연기하는 본인의 모습이 익숙지 않은 까닭인지, '조금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고도 덧붙였다.

“처음 볼 땐 잘 보지도 못 했어요. 저는 언제쯤 제가 등장하는지를 알잖아요. 그래서 나오기 5초 전부터 가슴이 막 쿵쾅쿵쾅 뛰더라고요.(웃음) 거의 공포영화 보는 것 같았어요. 영화 흐름은 하나도 안 보이고 ‘나 잘 하고 있나?’만 신경쓰더라고요. 다른 배우분들도 그러시려나요? 그래서 저는 아직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강승현은 “화면 속 모습에 자신감이 없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액션스쿨에서 열심히 배운 액션만큼은 나름 자신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기자가 “길쭉한 기럭지에서 뻗어나오는 발차기가 압권이었다”고 칭찬을 건네자, 그녀는 뿌듯한 표정으로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액션신은 다 합이 짜여져 있는데, 사실 제 발차기는 합에 들어가 있지 않았어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너 뭐할 줄 아니?’라고 물어 보시길래 '발차기 할 줄 안다'고 말씀드렸더니 추가가 됐어요.(웃음) 액션스쿨을 열심히 다닌 덕이지요. 촬영 전에 4개월 정도 다녔던 걸로 기억해요. 시간을 다 세어보니까 120시간 정도 배웠더라고요. 오랜만에 무언가를 두고 열심히 해본 것 같아요.”

‘독전’에 열심을 쏟아부은 강승현은 촬영 현장을 되돌아봤다. "나 혼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에 “가장 많은 조언을 해준 이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물음에 그는 고민없이 "조진웅 선배"라는 답을 내놓았다.

“직접 말로 조언을 많이 해주시진 않았지만, 조진웅 선배님은 존재 자체로도 아주 큰 힘이 되시는 분이에요. 캐릭터 자체도 형사 선후배잖아요. 선배께서 촬영 전부터 ‘우리 형사 조직은 끈끈해야 한다’며 다 같이 밥을 사주셨어요. 정작 본인은 다이어트 하느라 한 숟갈을 못 드셔도요.(웃음) 그 정도의 열의를 가지신 분이에요. 그러다보니 역할 속에서, 또 현장에서 선배님을 의지하고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30대에 접어든 나이에 다시금 새로운 스타트라인에 서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더구나 톱모델 강승현과 연기는 잘 매치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도 이름값에 걸맞은 화려한 역할이 아니라 강력계 형사를 맡았다는 건 꽤나 의외다. 이 궁금증에 그는 담담히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냈다.

“제가 모델을 10년 넘게 하면서 문득 ‘내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때 연기를 처음 접하게 된 거죠. 2015년에 웹드라마 ‘우리 헤어졌어요’에 출연한 게 계기였어요. 연기를 하면서 제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가를 깨닫게 됐죠. 그러면서 왠지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뒤로 혼자 연기 수업을 들으면서 차곡차곡 준비를 했죠.

‘챔피언’ ‘독전’을 찍으면서 당연히 부담이 있었어요. 모델의 이미지를 잠시 내려놓고 연기를 하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무언가를 처음 시작한다는 기분은 10년 만이었어요. 하지만 시작점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예전에 경험해봐서 잘 알고 있어요. 더구나 너무 멋진 선배들이 현장에 계셨잖아요. 하나하나 배워가는 그 과정이 즐거웠죠.”

 

인터뷰 내내 신인 연기자로서 겸손한 태도를 보인 강승현은 “‘독전’이 마지막 작품이 아니었으면 한다”는 소소하지만 큰 목표를 전했다. 조금씩이나마 연기자의 길을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걷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뒤이어 그녀는 스스로 그리고 있는 나름의 청사진을 밝혔다.

“모델은 런웨이 위에서 혼자 빛나는 일이에요. 그런데 연기는 때로는 빛났다가, 때로는 빛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지요. 그 차이점이 정말 매력 있지만 무척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걸 극복하는 건 아마 굉장히 긴 호흡의 과정이겠지요. 천천히 갈지언정 정확한 방향으로 가고 싶어요. 조급해 하지 않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응원 많이 해주세요.”

 

사진=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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