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기에서 치기어렸던 유년시절을 마주해 얼굴 붉히거나, 촌스러운 학창시절 사진을 무심코 발견하고 부끄러워진 기억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 않을까. 분명 남의 과거사라면 “귀엽다”고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내 것이기에 용납되지 않는 흑역사. ‘변산’은 이런 흑역사와 화해하며 성장해 나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변산’은 이준익 감독이 ’동주’, ‘박열’에 이어 청춘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며 내놓은 작품이다. ‘동주’에서 송몽규 역으로 백상예술대상 남자 신인연기상을 거머쥐며 충무로의 스타로 떠오른 박정민, ‘은교’로 강렬하게 첫 등장해 드라마 ‘도깨비’로 로코까지 섭렵한 김고은이 주연으로 나섰다. 여기에 고준, 신현빈, 김준한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합세해 쫀쫀한 케미를 선보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해 마지막 관문에서 번번이 좌절한 것만 벌써 6번째. 학수(박정민 분)는 2평 짜리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발렛 파킹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죽어도 서울에 뼈를 묻을 기세인 학수를 고향땅으로 불러들인건 초등학교 동창 선미(김고은 분)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조차 않았던 원수같은 아버지(장항선 분)가 병환으로 입원 하며 학수는 멱살을 잡혀 끌려가듯 고향 변산으로 향하게 된다.
 

학수에게 고향은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가 점철된 공간이다. 자신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문예반 선생님 원준(김준한 분)과의 재회, 집요하게 들러붙는 옛 친구들, 여기에 자신의 짝사랑 흑역사를 알고 있는 선미까지.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고향에서 예측 불허의 사건들이 발생하며 학수는 다시 이곳과 엮이게 된다.

‘동주’와 ‘박열’의 청춘이 이데올로기에 저항한다면, ‘변산’의 학수와 선미는 보상이 약속되지 않는 열정에 몸을 내던지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던 한 방송인의 말처럼 스스로의 행보에 거침이 없다. 그리고 이 좌충우돌 청춘들의 유쾌한 이야기에는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 풍성한 사운드가 인물들의 심리적인 변화와 극적인 흐름에 맞게 적절하게 배치되며 ‘사운드 공백’ 없는 영화를 완성시킨다. 학수가 힙합을 매개로 자전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부분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준익 감독은 학수가 일련의 사건을 통해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데 주력한다. 과거의 집대성인 ‘나’가 과거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점들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흑역사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학수는 과거의 인연들을 회피하는데 급급하지만 ‘성장’의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어제의 나와 화해해야 한다는 지점을 분명하게 일깨우고 있다.

그 과정은 고리타분하거나 진지하기 보다 경쾌하고 유쾌하다. 비록 강제소환 됐지만 학수는 치고, 박고, 싸우며 과거의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다. 영화는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특별히 웃기려 노력한 흔적은 없지만 옛친구와의 재회가 그렇듯 유치하면서도 편안하다. 스틸컷을 통해 공개된 갯벌 전투처럼, 질척거리는 관계를 뿌리치려고 발버둥치는 학수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7월 4일 개봉. 러닝타임 123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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