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에 송강호 아내 역으로 장혜진이 캐스팅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누리꾼들은 ‘장혜진이 누구야?’라며 궁금해 했다. 단역부터 차근차근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장혜진. 그는 ‘말양’ ‘우리들’ ‘용순’ ‘어른도감’ ‘니나내나’ 등에서 짧지만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가 봉준호 감독의 선택을 받고 ‘기생충’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엄마 충숙을 맡아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펼치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장혜진은 생애 처음으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집에서 혼자 지켜보며 눈물을 글썽였던 그는 영화가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흥행을 이어가자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고 전했다. 영화판에 들어온 뒤 ‘기생충’으로 가장 큰 배역을 맡았던 그에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모든 경험은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됐다.

“‘기생충’이 잘 되니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더라고요. 마치 본인의 일인 것처럼 좋아하고 즐거워하셨어요. 정말 감사하죠. 집안 어르신들은 애를 봐주신다며 ‘엄마 장혜진’보다 ‘배우 장혜진’을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남편도 딸아들도 마찬가지였죠. 무엇보다 애들 담임선생님과 제 베스트 프렌드, 친한 어머니들만 ‘기생충’ 이야기를 아셨는데 다들 스포일러 안 하셔서 감사했어요.”

“봉준호 감독님이 ‘우리들’을 보시고 직접 연락을 주셨어요. ‘저는 영화감독 봉준호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셨는데 제가 크게 놀라지 않았어요. ‘반응이 왜 그렇죠’ 하시는 거예요. 제가 ‘15년 전에 살인의 추억하실 때도 전화주셨어요’라고 하니 감독님이 ‘제가요?’하며 깜짝 놀라셨어요. 그때 제가 연기를 그만 두고 고향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죠. 감독님이 생업을 포기할 정도의 배역은 아니니 더 좋은 영화로 만나길 바란다고 하셨죠. 그게 ‘기생충’이 됐네요.”

장혜진에겐 ‘기생충’이란 작품 자체가 연기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었다. 봉준호 감독, 송강호 등 기라성 같은 충무로 대표 영화인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기도 하면서 부담이었다. 하지만 장혜진은 주눅들지 않았다. 그도 오랜 연기 경력이 있는 배우였기 때문이다. 그이 연기로 탄생한 충숙이란 캐릭터는 우리의 엄마를 그대로 그려냈다.

“영화 참여하기 전까지 이 영화가 칸영화제에 갈지 몰랐어요. 봉준호 감독님, 송강호 선배님과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자 부담이었어요. 제가 영화에 폐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됐죠. 주변 사람들에게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를 못하니 혼자서 ‘난 잘할 수 있어’ ‘어떡하지’하며 생각만 했어요. 영화가 개봉하고 관객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저를 몰라보세요. 그래도 이게 편하더라고요. 관객분들은 충숙에게 몰입하셨고 저 장혜진을 충숙으로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거잖아요. 저는 관객분들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감독님이 충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마치 제가 세뇌 당하는 느낌이었죠.(웃음) ‘감독님은 계획이 다 있으시구나’ 생각했어요. 충숙이란 캐릭터를 구축하려고 많은 걸 연구하기보다는 시나리오에서 드러나는 있는 그대로의 충숙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감독님도 그런 방식으로 연기할 수 있게 도와주셨죠. 송강호 선배님과 같이 연기하면 에너지가 넘쳐요. 대사처리를 어떤 방식으로 해도 다 받아주시죠. 선배님은 저를 알려지지 않는 배우라고 해서 이상하게 보지도 않고 충숙이란 캐릭터를 맡은 ‘배우 장혜진’으로 존중해주셨어요.”

장혜진은 ‘기생충’을 찍으면서 많은 걸 느꼈다. 눈물도 많이 흘렸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기생충’ 세계에 감탄하며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부분들을 몸소 느꼈다. 엄마의 마음으로 현실을 어렵게 살아가는 자식들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가 완전히 ‘기생충’에 녹아들어 있었다.

“충숙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현실적이고 ‘엄마’로서 할법한 이야기였어요. 충숙은 아들 기우(최우식)와 딸 기정(박소담)이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있죠. 부모라면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미안할 거예요. 충숙은 어떻게든 이 가정을 깨뜨리기 싫었죠. 제가 메이킹 영상을 찍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어 또 울었어요.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건 아닐까’ ‘힘든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은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고요. 봉준호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세요. 저한테 이런 마음이 들게 만드셨으니까요.”

“이 영화가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순간은 기우가 박사장(이선균)네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갈 때였어요. 기우의 옷 기장은 짧고 오래돼 보였죠. 현실에서 사회초년생들을 보고있으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을 텐데 성공하기 쉽지 않잖아요. 기우가 부모님에게 용기를 주면서 낡은 가방을 메고 박사장네로 향하는데 기우의 뒷모습이 짠해 보였어요. 그 모습을 보고 현장에서 또 울었어요.(웃음) 그 스틸사진이 제 캐릭터 포스터에 쓰였더라고요. 자세히 보면 연기가 아니라는 걸 아실 거예요. 그때 엄마 입장에서 순간적으로 감정이입 됐으니까요.”

②에서 이어집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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