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펫계의 살아있는 전설’ 호칸 하르덴베리에르(57)는 ‘지구상의 가장 정결하고 섬세한 연주를 펼치는 트럼피터’로 여겨진다. 1980년대 이래 30여 년간 트럼펫 제왕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천부적인 테크닉을 바탕으로 고전 레퍼토리뿐만 아니라 신작의 개척자로 위상이 높다. 거장의 아름답고 풍부한 음색, 화려한 기교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서울시향의 세 무대가 연이어 열린다.

 

◆ 실내악 시리즈 II(4월1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서울시향 단원들과 함께 실내악 연주를 펼친다. 서울시향 수석객원지휘자 티에리 피셔(61)의 지휘 아래 평소 접하기 힘든 20세기 근현대 트럼펫 레퍼토리를 연주한다.

스트라빈스키 ‘병사의 이야기’ 모음곡으로 문을 연다. 러시아의 옛 설화를 소재로 스트라빈스키가 직접 쓴 무대극에서 발췌해온 작품으로, 협주곡 형태의 악곡을 포함해 탱고와 파소 도블레, 래그타임 등 대중적인 춤곡이 한데 어우러졌다. 이어 지난해 타계한 스웨덴 작곡가 폴케 라베의 ‘정어리 석관’을 선사한다. 노르웨이 베르겐에 위치한 옛 정어리 가공 공장으로 사용되던 장소에서 위촉한 작품이다. 스트라빈스키가 바흐에 대한 오마주로 작곡한 아르데코풍의 트럼펫 협주곡 ‘덤바튼 오크스’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무대는 죄르지 리게티 오페라 ‘거대한 종말’ 중 트럼펫 앙상블을 위한 3개의 아리아 ‘종말의 신비’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메시앙과 함께 20세기 후반 최고 작곡가로 꼽히는 리게티는 유럽 모더니즘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다. ‘거대한 종말’은 과학소설과 모순이 뒤섞인 음악적 희극으로, 이번 공연에서는 세 아리아를 솔로 트럼펫과 앙상블을 위해 편곡한 버전으로 들려준다.

 

◆ 티에리 피셔와 호칸 하르덴 베리에르 ①&②(4월18~19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지휘자 티에리 피셔와 트럼피터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함께하는 관현악 무대다. 하이든부터 치머만까지 두 세기를 뛰어넘는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사한다.

하르덴베리에르는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의 트럼펫 협주곡을 협연한다. 치머만은 아방가르드 음악을 해야 살아남았던 시기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작품을 쓰다 배척당했고 독약을 먹고 세상을 등졌다. ‘아무도 내가 아는 고통을 모른다’는 치머만의 수작으로 꼽힌다. 19세기 미국에서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부르던 흑인 영가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헌신적 휴머니스트였던 치머만은 이 작품을 통해 인종간 미움과 혐오에 대한 반대, 우애의 메세지를 담았다. 조성적이며 재즈 요소가 다분해 비교적 다가가기 쉬운 작품이다.

명석한 해석과 균형감각, 고전부터 현대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스위스 출신 티에리 피셔가 지휘봉을 잡는다. 이번 공연에서 니체의 세계관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메인 프로그램으로 지휘한다. 웅장한 악상과 치밀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오케스트라 악기의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해 관현악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도입부에 쓰여 친숙하다. 양일 출연자와 프로그램은 동일하다.

 

사진= 서울시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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