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한국전쟁 북한고아 1500명이 비밀리에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폴란드로 보내진다. 폴란드 선생님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의 상처를 사랑으로 품고, 아이들도 이들을 ‘마마’ ‘파파’라 부르며 따른다. 하지만 8년 후 북한에서 천리마운동이 전개되는 시점에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송환 명령에 따라 정든 선생님의 품을 떠난다. 60여 년이 흐른 현재, 생존한 고령의 선생님들은 지금까지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고 그리워하며 눈물 흘린다.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감독인 여배우 추상미와 배우를 꿈꾸는 탈북여성 이송의 특별한 폴란드 여정을 그린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깔끔하고 경쾌한 터치로 러닝타임 1시간19분을 리드미컬하게 조율한다. 이런 류의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느린 템포와 무거운 채도를 유지했던 것과 달리 웰메이드 상업영화를 보는 느낌을 자아낸다.

전쟁의 비극과 위대한 사랑이란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과거와 현재, 북한 전쟁고아와 탈북 청소년, 남과 북의 두 여자, 교사의 사랑과 모성애, 폴란드 선생님들과 북한 고아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공통점 등 여러 겹의 이야기를 포개고 연결고리 삼으면서 서사를 풍부하고도 흥미롭게 채워간다. 작위적인 느낌이나 산만함이 느껴지질 않는다.

탈북자들을 다룬 영화 ‘그루터기들’ 오디션 현장에 모인 탈북 청소년들의 각양각색 사연이 소개되는 액자극 형식이 등장하는가 하면, 폴란드로 보내진 북한고아들 가운데는 남한의 아이들도 있었다는 식의 추적스릴러 느낌을 살짝 덧대며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영화와 드라마, 연극무대에서 경험을 켜켜이 쌓은 배우의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목울대가 뜨겁게 아려지는 대목은 백발의 폴란드 교사들이 무려 반세기 전, 한 세월 함께했던 한국고아 한 명 한 명을 추억하며 찍어내는 눈물의 의미다. ‘진정성’이란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먹먹한 감정이 보는 이의 가슴으로 휘몰아쳐 온다. 그리고 소녀와 여인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듯한 탈북 예비배우 이송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있어 핵심인 리얼리티를 한껏 부여한다. 자칫 시나리오·연출·출연·내레이션을 맡은 추상미가 빠질 수도 있었던 매끄러운 ‘상업성’의 함정을 날이 선 솔직함과 상처투성이 삶이 선물한 성숙함으로 너끈히 메워낸다.

폴란드 공동묘지 한 귀퉁이에 있던 13세 북한소녀 김귀덕(1955년 9월20일 사망)의 묘지에서 시작돼 만들어진 2006년 폴란드 공영방송 다큐멘터리 ‘김귀덕’, 2013년 폴란드 소설 ‘천사의 날개’에서 착안해 남과 북 여성의 시선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유의미한 여정을 그려낸 ‘감독 추상미’는 연기가 아닌 작품으로 관객을 충분히 감동시킨다.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1시간19분. 10월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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