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가 강제추행 가해자로 지목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란 표현이 다시금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안태근 전 검사(52·사법연수원 20기)는 검찰 내에서 꽃길만 걸었던 인물이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인 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장·법무부 정책기획단장·대검 정책기획단당·서울서부지검 차장·법무부 인권국장 등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 요직만 두루 거친 ‘엘리트 중 엘리트’로 꼽힌다.

법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0일 모 방송과 인터뷰에서 “2명의 법무부장관이 연이어 그를 끼고 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직에 앉히기에 그 배경이 뭘까 궁금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법무부 검찰국장은 고검장 승진 1순위인 자리다.

 

 

거침없이 승승장구했으나 지난해 4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불구속 기소된 뒤 나흘 만에 국정농단 사건 수사 책임자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사 대상자인 안 전 국장이 함께 저녁 식사를 했고, 수사팀 간부들에게 50만~100만원이 들어있는 금일봉을 건넨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켜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다가 면직 처분됐다.

출세라는 이름의 초고속 엘레베이터, 검사 가운데서도 상위 1%만이 입성할 수 있다는 ‘법무부’에서 무려 세 차례나 국장직을 꿰찼던 엘리트 중 엘리트가 기억이 부실하다는 건 ‘국가적 비극’이다. 그 세 장면이다.

 

 

# 하나. 지난 2010년 10월 안 전 국장이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이던 시절 한 장례식장에서 옆에 앉게 된 서 검사를 성추행한 사실이 29일 서 검사의 내부고발로 세상에 알려졌다. 취재진의 질의에 그는 “오래 전 일이고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다만 그 일이 검사 인사나 사무감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술과 시간을 이유로 들며 ‘기억이 나질 않으나’ 만약 사실이라면 사과한다는 면피성, 조건부 사과인 셈이다. 서지현 검사와 임은정 검사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법무부 내에서 성추행 관련 감찰이 어느 정도 진척됐기에 가해 당사자인 그가 몰랐을 리가 없고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 둘.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11월, 검찰 인사를 쥐락펴락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그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와 노회찬 정의당 의원으로부터 ‘부산 엘시티 비리 관련 의혹 사건’과 관련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게 보고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기억에 없습니다”라고 말한 뒤 “보고를 안 했을 수도 있고요” “모르겠습니다”라고 불성실한 답변을 이어갔다. 입꼬리엔 웃음마저 걸려 있었다. 안하무인 태도에 어이없어 하던 노회찬 의원은 “막장입니다. 막장이에요”라고 말하며 질의를 마쳤다.

☞ 안 전 국장이 국회의원을 상대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우병우 사단’이었기 때문이다. 우 전 수석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2016년 7월부터 10월 사이 우 전 수석과 1000차례 이상 통화한 사실이 당시 특검 수사로 확인돼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 셋. 면직되면 2년간 변호사 개업이 금지된다. 검사복을 벗은 안태근 전 국장은 종교에 귀의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난해 10월29일 온누리교회에서 간증(신앙고백)을 했다. 그는 세례 후 간증에서 “30년 동안 공직자로 살아오며 나름대로 깨끗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순탄하게 공직생활을 해왔다”며 “그러다 뜻하지 않은, 본의 아닌 일로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고, 주변의 많은 선후배·동료·친지들이 ‘너무 억울하겠다’며 같이 분해하기도 하고 위로해 주었다”고 밝혔다. 막판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자신의 30년 공직생활을 “깨끗하고 성실했다”고 총평했다. “억울한 일로 잘렸다”고 토로했다. 이쯤 되면 기억상실증을 넘어서 검사의 기본 소양인 ‘정의와 양심’ 불감증 환자임이 아닐까 사료된다.

 

사진= JTBC, 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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