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악(惡)’이다. ‘밀정’부터 ‘범죄도시’까지 그는 수많은 악역을 맡으며 신스틸러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11월 7일 개봉한 ‘신의 한 수: 귀수편’에서도 허성태는 부산잡초 역을 맡아 악의 기운을 뿜어낸다. 하지만 100% 악은 아니다. 입체적인 부산잡초를 통해 허성태는 또 다른 악역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신의 한 수’ 오리지널 제작진이 뭉쳐 만든 스핀오프 영화다. 바둑이라는 소재에 액션을 더해 기존 영화와 차별화를 뒀다. 이번 영화에서는 수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중 한명이 바로 허성태다. 스크린을 씹어먹을 것 같은 표정으로 관객들에게 서늘함을 선사할 그의 연기를 보면 식은땀이 절로 나온다.

“시나리오를 보고 직접 연기했음에도 ‘신의 한 수: 귀수편’을 영화로 본 순간, 그 몰입감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영화가 귀수(권상우)의 바둑 도장깨기로 진행되니 각 대결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포스가 상당했죠. 저는 보통 제가 출연하는 영화를 10번 이상 보거든요. 이번 영화도 그 이상을 보게 될 것 같아요. 특히 장성무당 역의 원현준, 외톨이 역의 우도환 연기를 보면서 정말 무서웠어요. 정말 순한 애들인데 말이죠.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동생들은 물론 선배님들도 두말할 것 없이 환상적인 연기를 펼쳤어요.”

“리건 감독님과 7~8년 전에 영화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었어요. 당시 저는 단역배우였죠. 감독님이 그때 저한테 ‘이 상태로는 배우할 수 없다’고 독설을 하셨어요. 그때 저는 엄청 힘든 시기였는데 그 말을 듣고 억장이 무너져내렸죠. 진짜 펑펑 울면서 집으로 갔어요. ‘두고 보쇼. 나중에 당신한테 제대로 보여줄테니까’하며 독기가 생겼어요. 그 이후 이번 영화로 만나게 됐죠. 실제로 감독님이 정말 착하시고 배우의 의견을 다 들어주세요. 솔직히 그때 그 독설이 제게 큰 힘이 됐죠. 독설 아니었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테니까요.”

허성태는 부산잡초에 대한 애정이 컸다. 스토리가 있는 악당, 그것이 허성태가 부산잡초에게 끌린 이유였다. 귀수를 상대할 때는 악한 기운을 내뿜으면서도 어떤 장면에서는 사람 냄새나는 이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허성태의 강인함과 나약한 면이 동시에 스며든 부산잡초는 ‘신의 한 수: 귀수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됐다.

“정우성 선배님, 그리고 저의 스승 이범수 선배님이 나오신 ‘신의 한 수’ 1편을 재미있게 봤어요. 제가 1편 오디션에서 떨어졌거든요. 리건 감독님이 부산잡초 역으로 캐스팅하겠다고 전할 때 이 배역을 놓치고 싶지 않았죠. 감독님이 저한테서 독기와 끈기를 발견하셨대요. 부산잡초에게 꼭 필요한 요소들이죠. 저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김)희원 선배님이 맡은 똥선생 역을 원한다고 했어요. 똥선생이 정말 재미있는 캐릭터였으니까요. 그런 역할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부산잡초는 한마디로 바둑 두는 건달이자 이유 있는 악당이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하고 자존심이 강해 한판 져도 이길 때까지 내기를 멈추지 않아요. 하지만 완전한 악당이라고는 볼 수 없어요. 영화 속에서 부산잡초도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감정의 변화를 느끼거든요. 찌질한 부분도 있고요. 입체적인 부산잡초의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저 역시 그런 부산잡초를 잘 표현하고 싶었죠. 저는 바둑돌로 따지면 흑과 백 사이. 똥선생이 때 탄 흰돌이라면 부산잡초는 색이 옅어진 흑돌이죠.”

이번 영화에서는 권상우, 김희원, 김성균, 허성태, 우도환, 원현준 등 남자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그들의 에너지는 스크린을 뚫고 나올 정도다. 기자간담회, 유튜브 영상, 예능 등에서 보여진 이들의 케미는 남달랐다. 같이 부딪히는 신이 많지 않은 배우들도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허성태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배우들끼리 촬영 들어가기 전 두 달 동안 바둑을 배웠어요. 1편에서 코칭하셨던 분이 저희들을 다 가르치셨죠. 기보를 다 종이에 적기도 했고 그걸 외우기도 했어요. 저는 바둑실력이 기본 정도는 되는데 나머지 배우들은 바둑을 잘 못 두더라고요. 솔직히 제가 그 안에서 제일 잘했어요. (권)상우형과 (김)성균이 하는 걸 보면 한숨만 나왔죠.(웃음) 나중엔 희원 선배님과 당구 영화도 찍자고 말했어요. 희원 선배님이 당구 잘 치시고 스타크래프트도 잘 하시거든요.”

“저희가 단합이 잘 된 건 감독님 덕분이었어요. 감독님이 캐스팅하실 때 사람을 뽑지 배우를 뽑는 개념이 아니더라고요. 다들 힘들었던 과거가 있고 공감대가 많았죠. 그래서 1편보다 잘 해야한다는 부담이 생기지 않았어요. 저희끼리 으쌰으쌰해서 열심히 하는 게 행복했으니까요. 저희 단톡방에 유행어가 있어요. 상우형이 야구를 좋아하는데 기사 뭐 하나 뜨면 ‘야구를 할 거 같으면 너처럼 할 거 같다’라고 해요. 저한테도 ‘성태야, 귀신이 인터뷰를 한다면 너처럼 할 거 같다’라고요.(웃음) 정말 좋은 사람들, 대단한 배우들을 만나 행복했어요.”

②에서 이어집니다.

사진=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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