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연말 홍콩으로 갔던 출장. 12월2일 구룡반도 내 홍콩체육관에서 열린 장국영의 컴백 콘서트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6년 전, 연기에 집중하겠다며 가수로서 고별 콘서트를 가졌던 그가 컴백 1년 만에 마련한 대규모 공연이라 콘서트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팬들로 가득했다.

 

 

핀 라이트가 무대 중앙을 비추자 빨간색 마놀로 블라닉 힐을 신은 하얀색 다리가 천천히 등장했던 오프닝이 당시로선 무척이다 센세이셔널했다. 성(性)과 고정관념을 '가볍게' 깨트리는 듯한 장국영의 연출이었다(훗날 그는 자신이 바이섹슈얼임을 밝혔다). 그의 영어 이름인 "레슬리"를 절규하듯 부르는 여성 관객들이 귓전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장장 2시간30분에 걸쳐 이뤄진 콘서트는 한 편의 뮤지컬을 보듯 드라마틱했고, 백만불짜리 홍콩 야경보다 더 눈부신 장국영의 엔터테이너 기질을 여실히 입증했다. 게스트로 영화 ‘색정남녀’(96)에서 호흡을 맞춘 신인 여배우 서기가 등장해 장국영과 에로틱한 무대를 꾸민 것도 인상적이었다.

지금의 40~50대에게 장국영은 단순한 해외 스타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한류가 대세이지만 홍콩·일본문화가 투톱 체제로 아시아권을 주도하던 1980년대에 그는 매혹적인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비운의 모범경찰 아걸(영웅본색), 순수청년 영채신(천녀유혼)으로 새로움을 갈급하던 청년세대에게 꿈과 위안을 안겨준 주인공이었다.

 

 

세기말의 기대와 혼돈이 내연하던 90년대, 러닝셔츠 바람으로 맘보춤을 추던 ‘아비정전’을 비롯해 ‘종횡사해’ ‘백발마녀전’ ‘패왕별희’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성월동화‘ 속 우수 어린 모습으로 대중과 함께 동시대를 호흡했다.

15년 전, 4월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장국영. 팬들에겐 마흔 일곱의 꽃중년으로 영원히 봉인된 그는 칠흑 같은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었던 동시에 사랑스러우면서도 그늘 짙은 지상의 연인이었다. 15주기를 앞두고 그가 그리워지는 이유다.

 

사진= 록레코드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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