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읽고 쓰는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가 15일 언론시사를 통해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탄생 연대기를 공개했다.

◆ 흥미로운 드라마

영화는 5000년 우리 역사에서 빛나는 성취인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의 가치를 신미 스님(박해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풀어낸다. 어려운 한문을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독점했던 15세기 그날들을 배경 삼아 유교를 국시로 창건된 조선왕조 임금 세종(송강호)이 스님과 손잡고 민초들도 향유할 수 있는 한글을 만들었다는 드라마가 사뭇 흥미롭다.

한글창제를 둘러싼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과 마주하게 되는 지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유교와 불교의 종교적 대립, 사대주의자와 자강파의 충돌, 최고 권력층인 왕과 가장 천한 계층인 스님이 보여주는 협업과 갈등은 서사를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만든다. 여기에 자음과 모음, 총 28자의 한글이 품은 과학적 원리와 완성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은 딱딱한 역사책을 벗어나 역동적인 이야기로 가슴을 파고든다. 세종과 함께했던 신미, 신미의 제자이자 도반인 스님들, 소헌왕후(전미선), 새로운 문자를 익혀 사가에 퍼뜨렸던 궁녀들까지 위대했던 왕의 업적으로 여겨졌던 한글이 모두의 성취였음을 웅변한다.

◆ 명대사 열전

작품 전편에 포진한 대사들은 말말이 의미심장하며 향기롭다.

새 문자를 격렬하게 반대하는 유신들을 향해 세종이 “공자가 부처를 만났대도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부처의 말도 진리라 생각한다. 세상이 진리 때문에 망하지는 않는다. 서로를 이단아라 삿대질하며 제 밥그릇만 챙기다 망하는 것이다” “너나 나나 백성들이 지어준 밥을 빌어먹고 살지 않느냐” “나는 새 문자로 그 독점을 깨버리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라고 하는 대사는 오늘의 정치인 그리고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대신들의 반대에 직면, 멈칫한 세종에게 소헌황후가 일침을 가하는 “더 이상 백성들은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든가 한글창제 이후 궁녀들을 향해 “암탉이 울어야 나라도 번성하리라. 새 문자를 열심히 익혀 각자 사가의 여인들에게도 퍼뜨려라”는 대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박해일의 역연...그리고 고 전미선의 존재감

‘나랏말싸미’ 속 스님 신미는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역적의 아들로 나라가 금지한 불교에 귀의해 임금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는 반골기질을 드러내는가 하면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파스파 문자에 능통한 인텔리전트다. 총명하고 강건한 ‘꼴통’ 캐릭터를 맡은 박해일은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이지만 삭발투혼과 더불어 과함 없이 인물의 결과 호흡을 고스란히 살려낸다. 툭툭 이어지는 짧은 대사를 통해서 고민의 크기와 깊이가 여실히 느껴질 정도다. 근래 봤던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명연이다.

송강호는 총명하고 완벽주의자로 여겨져온 세종에 강함과 나약함, 고단함, 특유의 페이소스를 불어넣으며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후반부 소헌왕후 천도제 신은 왜 그가 수년째 국민배우 타이틀을 달고 있는지 압축해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고인이 된 배우 전미선. 많지 않은 등장에도 숱한 사극에서 그려온 전형적인 왕비 상에서 탈피해 단아한 가운데 서슬 퍼런 위엄을 지닌, 깨인 여장부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전형성에 머무를 수 있는 송강호의 연기에 숨통을 틔워주고, 남성 위주로 흘러갈 법한 이야기에 여성의 존재감을 자연스레 접목하는 역할을 눈부시게 완수한다. 앞으로 배우로서 쓰임새가 더욱 무궁무진할 것임을 확인한 작품을 유작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러니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체관람가. 1시간50분. 7월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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