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봄볕이 따뜻하던 지난 5월. JTBC ’미스 함무라비’(이하 ‘함무라비’)가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작도 아니었을 뿐더러, 기존 법정드라마처럼 거대조직과의 암투를 다루지도 않았다. 선인과 악인도 뚜렷하지 않은 이 드라마가 어째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사실 ‘함무라비’에 대한 시청자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양극화 현상을 보일 정도로 젠더이슈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시류에 ‘목소리 큰 여자 판사’ 박차오름(고아라 분)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 수록 드라마는 당연한 것을 어느 순간 ‘불편하다’고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 고아라, 사회의 타성에 젖은 ‘나’를 향한 질문
 

박차오름은 부장판사부터 초임판사들까지 자리한 석상에서 입바른 소리로 눈총을 받는 법원 내 문제아다. 그 방법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직설적이고 저돌적이어서 시청자들에게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유교사상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우리나라에서 직장 상사의 면전에서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하는 박차오름은 자칫 예의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 수록 박차오름의 한결 같은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사고의 전환을 불러 일으켰다. 입으로는 사회적 악습을 끊어낼 것을 외치면서도, 이에 저항하는 박차오름을 외면하게 되는 스스로를 보며 ‘기성의 타성에 나 역시 젖어있지는 않은가’를 질문하게 했다.

특히 9회에서는 부정청탁을 받은 감성우(전진기 분)를 내부고발한 박차오름에 대한 법원 내의 따가운 눈총이 그려졌다. 감성우에 대한 처벌이 당연한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했음에도 오히려 박차오름이 비난의 중심에 선 것.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소수의 노력이 사회적인 통념이라 장벽 앞에 무너져야 했던 몇몇 사건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 김명수, 천천히 내일로 나아가는 방법
 

임바른(김명수 분)은 박차오름을 통해 가장 크게 변화를 맞이하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기자로 일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싸우다 처절한 ‘패자’가 된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박순천 분)는 이런 아버지를 대신해 평생을 가계부 속 숫자와 싸워온 실질적 가장이다.

그렇기에 임바른에게 박차오름은 정의와 위태로움의 경계에 선 인물로 보인다. 보수적인 법원 조직에서 박차오름이 약자를 위해 베푸는 선의는 때로 임바른에게 “왜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사실상 시청자들의 시선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극중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매개가 되지만 임바른은 박차오름을 통해 자신이 ‘중립’이라며 고수해온 선을 조금씩 허물어 나간다. 그리고 법관으로서의 판단이 사회적인 비난 여론에 직면한 박차오름이 흔들리는 순간 “함께 걷겠다”라며 자신의 사표를 그녀의 손에 맡긴다. 그 과정이 불편할 지언정 임바른처럼 우리도 분명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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