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영화 시장도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전멸에 가깝다. TV드라마 수준이 날로 높아지면서 이제 ‘로코=드라마’ 공식이 생겼을 정도. 채도 짙고, 스케일 큰 영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는 대세에 편승하는 대신 발칙한 상상력과 웃음을 가미한 로코 한 편이 2월말 관객들을 찾아온다. 영화 ‘신과함께’ 드라마 ‘손 the guest’로 연이어 흥행 홈런을 날린 김동욱, 드라마 ‘마더’ ‘슈츠’ ‘미스 마; 복수의 여신’으로 날로 밀도깊은 연기를 완성해가는 고성희의 공연이 뜻밖의 웃음을 안긴다.

 

# 1PICK: 로맨스 없는 로맨틱 코미디 ‘요즘 연애’

‘어쩌다, 결혼’은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결혼을 해야하는 성석(김동욱), 결혼 압박을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은 해주(고성희)가 맞선에서 만나며 시작된다. 각자의 목적을 위해 가짜 결혼을 결심하는 ‘쿨병’ 걸린 듯한 두 남녀는 관객들의 정서에 상경하고 조금은 낯설게 다가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로코들이 답습해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랑에 빠지는 전개를 비켜가며 오히려 ‘요즘 것들의 연애’를 표방하는데 충실하다.

새털처럼 가벼워보이지만 저마다의 진정성이 있고, 관계의 연속성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2030세대의 연애가 영화를 만나 극적으로 전개된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구심점을 향해 달려가지만 성석과 해주라는 인물의 성장기를 그리는데 집중한다. 박호찬, 김수진 감독이 각각 남녀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며 판타지를 채우기 위해 일방통행하던 종전의 로코들과 차별화를 선언했다.

 

# 2PICK: 등장하면 터지는 믿보배 하객 군단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는 바로 ‘특급 하객 군단’이다. 어떤 배우를 만나도 찰떡 케미를 발산하는 황보라를 비롯해 모처럼 악역 이미지를 벗어던진 김의성, 대세 중에 대세로 떠오른 아갈미향 염정아, 매 작품마다 美친 존재감을 보여주는 조우진, 언제 등장할지 자꾸만 기다리게 되는 김선영 등이 러닝타임 내내 쫀쫀한 재미를 선사한다.

여기에 이준혁, 유승목, 임예진 등 오랜 연기 내공의 조연들이 김동욱과 고성희의 공연에 더욱 힘을 싣는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태양은 없다’ 이후 20년만에 처음으로 같은 작품에 공연하는 국보급 미남배우 이정재, 정우성의 깜짝 출연이다. 신인 감독, 신인 배우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 공감해 기꺼이 발벗고 나선 톱스타들의 깜짝 등장은 ‘어쩌다, 결혼’의 보는 재미를 더한다.

 

# 3PICK: 번갯불에 콩구워 먹는 결혼, 속도감 있는 전개

로맨스 없는 로코인만큼 ‘어쩌다, 결혼’의 장점은 감정 소모없는 전개다. 성석과 해주는 모두 결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이 점을 묘사하기 위해 구구절절 사연팔이를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시점에서 이들의 트라우마 혹은 내적갈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긴다. 점층적으로 캐릭터가 쌓이지 않아 자칫 공감대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유쾌하게 보기에 무리가 없다.

 

같은 시기 개봉하는 ‘자전차와 엄복동’, ‘항거’가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굵직한 작품이라면 ‘어쩌다, 결혼’은 관객 입장에서 가벼운 소재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봄이 한발 앞으로 다가오는 요즘만큼 로코를 즐기기 좋은 계절이 있을까. 러닝타임 87분. 개봉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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