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초연으로 시작된 뮤지컬 ‘아랑가’는 삼국사기 ‘도미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백제 개로왕과 그의 충성스러운 장군 도미, 도미의 아내 아랑 그리고 이들을 위협하는 고구려의 첩자 도림, 극의 전반을 해설하는 도창, 아랑과 도미에게 삶에 빚을 진 소년 사한까지 5명의 배우가 극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팽팽하게 이끌어간다.

‘아랑가’의 무대는 매우 단순하다. 높지 않은 검은 단 위에는 왕좌 하나가 있고 무대 구석에는 벤치가 하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반대로 조명효과는 화려하다. 무대에서 힘을 뺀 만큼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조명의 미디어 아트가 화려하게 무대를 수놓는다.

인물을 비추는 조명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극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무대는 마치 한 폭의 작품처럼 관객의 눈에 비춰진다. 또한 극의 역동성에 따라 조명은 관객석까지 뻗어 나가며 무대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고구려 군대가 백제를 침략하는 긴박한 상황을 연출할 때 도창의 높아지는 목소리와 미디어 아트의 조합은 단연 일색이었다.

무녀의 저주를 받아 평생을 괴로워하며 사는 개로왕과 그를 꿈속에서 위로하는 여인 아랑 그리고 아랑의 남편 도미. 이 셋의 엇갈린 관계는 극이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세 사람의 비극적 만남을 통해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시간이 무엇인지,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또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마지막에 개로왕은 모든 시간이 덧없었고 “이 긴 시간을 살아냈건만 도무지 산 것 같지 않구나”라고 허무함을 통탄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아랑이었다며, 지울 수 없는 낙인 같은 사랑을 인정한다.

공연은 추상적인 표현들로 가득하다. 개로왕에 의해 눈을 잃은 도미의 모습을 보여줄 때 부채를 찢는 등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행위를 통해 극을 한편의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작은 조각배, 흩날리는 꽃잎은 ‘아랑가’의 무대장치를 완성하는 주요한 소품. 마지막 개로왕이 꽃잎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은 ‘아랑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도창은 극 전체를 좌우하는 역할이다. 판소리 화자 도창은 개로왕에게 저주를 내리는 무녀의 목소리로 변하기도 하고, 빠르게 지나가야 하는 극의 흐름에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게 극을 설명해주는 역할도 한다. 도림과 사한의 격투씬에서는 두 사람의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대사를 통해 격투의 치열함을 그려냈다.

이처럼 도창은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관객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도와줬다. 하지만 대사가 빠르고 감정이 굴곡이 잦은 판소리 특성상 도창의 대사에 깊이 집중해야 흔들리지 않고 극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관객들에게 피로함을 주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생긴다. 그러나 감정에 따라 도창이 절규하는 모습은 공연장 전체를 압도하며 관객들이 몰입하게 만든다. 도창의 판소리는 ‘아랑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기에 그의 존재감은 더욱 소중히 다가온다.

한편 뮤지컬 ‘아랑가’는 4월7일까지 대학로 TOM 1관에서 공연된다.

사진=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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