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영화팬들의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하는 마블 히어로가 또 색다른 작품으로 가을 극장가를 찾았다. 이번엔 그냥 히어로가 아니라 ‘빌런 히어로’를 표방하는 ‘베놈’(감독 루벤 플레셔)이다. 하지만 그 독특한 타이틀에 걸맞은 재미를 선사하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베놈’은 진실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열혈 기자 에디 브록(톰 하디)이 거대 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뒤를 쫓다 그들의 실험실에서 외계 생물 심비오트의 습격을 받게 되고, 이후 심비오트와 공생하면서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진 베놈으로 거듭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베놈’은 나날이 발전하는 영화 기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외계 생물체 심비오트가 에디 브록의 몸을 잠식하는 모습부터 눈을 번쩍이게 한다. 크리처의 비주얼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압권은 심비오트가 에디의 심장에서부터 빠르게 번져가는 생경한 시각이 실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 생생한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후 베놈의 피지컬 특성을 활용한 톡톡 쏘는 액션이 휘몰아치는데, 히어로 무비 마니아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통쾌하다.

또한 심비오트와 숙주 에디 브록 둘 사이에 나누는 대화도 유쾌하다. 몸을 지배하려는 베놈과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에디의 대화는 꽤 쏠쏠한 재미를 준다. 쉽지 않은 연기를 멋지게 해낸 톰 하디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액션 비주얼이나 유머가 아닌 영화 전반의 서사로 시선을 돌린다면 아쉬움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 중에서도 빌런 히어로라는 색다른 장르에 대한 활용을 정확히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한숨짓게 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에디 브록이란 인물이 얼마나 정의로운지를 밝히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최고의 부호인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칼튼 드레이크 박사(리즈 아메드)를 향해 공격적인 취재를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 때문에 명예, 돈, 사랑 모두를 잃고 스스로를 ‘루저’라 칭하지만, 상황에 굴복하기는커녕 다시 라이프사에 잠입할 정도다.

극 전반부를 차지한 에디 브록의 이 같은 행동은 이후 과연 그가 심비오트에게 잠식당할 때 어떤 심리적 고뇌를 겪고, 또 베놈과 어떤 갈등을 겪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다소 기대와 다르다. 칼튼 박사라는 물리쳐야할 명확한 빌런이 있기에 그가 러닝타임 내내 고뇌에 빠져있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고민이 얕아 보인다. 포스터에 적힌 ‘영웅인가 악당인가’라는 문구가 무색하게 참 쉽게도 영웅의 행보를 걷는다.

 

첫 등장때부터 꺼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려 인간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던 베놈이 겪는 심경변화는 꽤 급작스럽다. 자신을 잡으러온 라이프사의 적들과 맞서 싸울 때만 하더라도 끊임없이 포식자의 모습을 드러냈지만, 클라이맥스 액션을 앞두고서 갑자기 에디에게 “여기가 마음에 들었다”는 농담을 건네며 정의의 사도로 돌변한다. 물론 이 또한 ‘유희’라는 욕망을 바라보는 이기심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이후 보이는 자기희생적 면모가 의문을 남긴다.

이 대목에서 ‘빌런 히어로’라는 형용모순적 캐릭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존재이기에 어떤 행동을 할 때든 늘 종잡을 수 없기 마련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통해 어떤 행동이 때로는 선이 되고 때로는 악이 되곤 하지만, 만일 선이든 악이든 그 행동의 의도가 명확하게 고정돼 버리는 순간 ‘빌런 히어로’라는 타이틀을 잃는 건 자명하다.

물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재미로만 본다면 ‘베놈’은 괜찮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빌런 히어로’라는 독특한 장르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깊게 남을 뿐이다. 개봉 첫 날인 오늘(3일) 예매율이 50%를 넘기며 팬들의 기대감을 입증한 가운데, 앞으로도 계속 관객들의 애정을 독차지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러닝타임 1시간47분. 15세 관람가.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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