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계상은 자신이 4차원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솔직한 배우다. 인터뷰 애티튜드도 마찬가지로 진솔했다. 힘들면 '힘들다', 부족하면 '부족하다' 등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냈다. 그는 기자의 칭찬에도 손사래 치며 "에이. 무슨 말씀이냐. 아직 연기 내공 없다. 사실을 기반으로 했던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 9일 개봉) 캐릭터가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윤계상 / '말모이'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가 영화 '범죄도시' 이후 1년여 만에 선보이는 '말모이'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김판수(유해진)가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그린다. 윤계상은 말을 모아 나라를 지키려는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을 맡았다. 아버지는 친일파지만 정환은 우리말 사전을 만들면서 일본에 저항하는 캐릭터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실존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게 왜, 얼마나 힘들었는지 윤계상에게 들어봤다.  

# 유해진 형님 때문에 작품 선택했죠 
"'말모이'는 유해진 형님이 이미 캐스팅된 상태에서 제게 출연 제안이 들어온 작품이에요. 해진 형님 때문에 작품을 선택하게 된 거나 마찬가지인데. 시나리오도 재미있는 거예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힘도 대단했어요. 형님이 연기할 역할이 까막눈 판수였는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 그 인물에 형님을 대입하며 읽었어요. 

시나리오가 좋으니 마치 영화가 완성돼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죽 지나가는데 유해진 형님이 주인공이라 더 재미있었어요. 해진 형님과는 '소수의견'(2015) 때 호흡을 맞추고 이번에 다시 만나 반가웠어요. 전작에서 뵀을 때보다 연기를 더 열심히 하셨어요. 촬영장에 일찍 나오시는 것은 기본이고 촬영 없는 날에도 출근하셨어요. 전과자이면서 까막눈인 김판수가 류정환의 가방을 소매치기하는데 그 사건으로 처음 만나요. 글도 못 읽는 사람이 여차여차해서 조선어학회에 들어가 회원들과 함께하려는데 처음에 정환은 당연히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극 초반 판수와 정환의 티격태격 케미도 관전포인트 중 하나일 만큼 재미 요소예요." 

윤계상(오른쪽) 유해진 '말모이' 촬영현장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일제강점기 우리말 지켜려 목숨까지 건 사실을 몰라 죄송했어요
"엄유나 감독님과 함께 자료를 살펴보며 작품을 준비할 때 '말모이 사건'이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이 충격적이었어요. 그동안 몰랐다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쓰는 우리말이 일제강점기에 누군가 목숨까지 걸고 지키려 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죄송했어요. 당시 그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말과 문화라 생각하니 감사했어요."

# 그동안 캐릭터 중 가장 힘든 역할이었어요
"극중 정환은 조선어학회 대표로 항상 날 선 모습을 보여요. 왜냐하면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펼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친일파 인사의 아들인데 아이러니하게 우리말 조선어학회 대표로 활동을 하죠. 아버지가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였고 아버지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은 거였는데. 아버지의 변절이 부끄러운 거예요. 

그래서 늘 날을 세우고 아버지와 대립하고. 아버지와는 달리 여전히 민족정신인 말을 지키는 게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 믿기에 주시경 선생이 남긴 원고를 기초로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한글 책방을 운영해요. 일제에 맞서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말모이’(사전의 순우리말이기도 함)를 해요. 정환은 또 책임감이 커서 딱딱하고 예민한 인물이이에요. 아버지의 변절과 주변 사람들의 배신, 일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사전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지의 인물이에요. 저로서는 그동안 연기했던 인물 중 가장 힘든 캐릭터였어요."

윤계상 / '말모이'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액션과 내면연기 중 쉬운 것요?
"액션 연기와 내면 연기 중 어떤 연기가 더 힘드냐고요? 액션, 내면 이런 걸 떠나서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연기가 가장 어려워요. 그래서 제 모든 걸 쏟아 부었어요. 탈진하면서까지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정작 영화에는 나오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제가 정환 감정의 깊이를 알아야 하는데 그 깊이가 너무 깊으니 잘 알 수 없는 거예요.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연기했고 가장 힘든 배역이었어요. 

몸을 많이 쓰는 액션 연기도 이렇게까진 어렵지 않은데 실존 인물을 표현하는 것에는 책임감이 따르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해서 무척 힘든 거죠. 무엇보다도 실제 있었던 사람이고 역사적 사실을 영화에 담는 것인데 관객에게 잘못 보이면 어쩌나란 걱정이나 부담이 있었어요. 때문에 촬영하는 내내 불안과 초조가 늘 제 뒤를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잘 웃지 못하고 손을 많이 물어뜯었어요. 이런 불안감은 영화가 시사회를 통해 공개되고 나서 말끔히 없어졌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 감독님 의도가 정확히 반영됐고 저도 안도했어요." 

윤계상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진정성 있는 배우 되고 싶어요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으면 비로소 얻어지는 게 있어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내려놓기 위해 노력해요. 한번 꽂히면 그게 정답이라고 오해하는 것에는 의심을 갖게 됐어요. 열심히 정답을 찾다가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다시 한 번 바라보는 훈련을 하게 됐어요. 배우기 때문에 욕심이 생기고 잘하고 싶은데 오히려 그런 마음들이 캐릭터를 망칠 수 있어요.

정환이 '왜 그토록 한글에 집착할까, 사전을 편찬하려는 이유는 왜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계속 찾으려 애썼어요. 사전 편찬에 매달리는 이유를 판수나 변절한 아버지한테서 찾으려 했는데 엄유나 감독님은 그 모든 걸 차단하고 제가 류정환 자체에만 집중하게 하셨죠. 저도 한걸음 떨어져서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정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어요. 그렇게 캐릭터에 접근할 때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 했어요. 제가 맡은 인물에 '진정성'을 부여하려 하는 건데 저도 관객에게 진정성 있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이젠 유해진 형님이 연기한 판수 같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어요. 찌질하고 망가지는 인물인데 진정성도 있는 인물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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