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훈(45)이 첼로앙상블 ‘4첼리스트’를 결성하고 첫 번째 정규앨범 ‘프롤로그’를 발매했다. 청춘을 첼로로 불살랐던 네 친구는 지난 2일 시작한 ‘2019 경기실내악축제’로 청중에게 뜨거운 우정의 선율을 들려줬다. 마지막 공연(30일)을 앞두고 단풍이 진 남산 초입의 한 호텔에서 데뷔 35년차 첼리스트를 만났다.

“학창시절(영국 왕립 노던음악원과 핀란드 시벨리우스 음악원)을 함께 보낸 20년지기 친구들이에요. 일이등을 다퉜던 사이죠. 이후엔 국제 콩쿠르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갔고요. 재학 중일 때 약속했던 게 2가지가 있어요. 각자의 나라에 돌아가서 첼로분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자, 경쟁만 할게 아니라 그룹으로 뭉쳐서 음악을 그리고 첼로를 왜 하는지 청중과 나눠보자였죠.”

2011년 앙상블을 이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처음 한국 관객과 만났다. 실내악은 청중이 많지 않은 편임에도 가는 데마다 대형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5년 연속 매진사례였고 록 콘서트를 방불케 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한껏 고무됐다. 요엘 마로시, 클라스 군나르손, 리웨이 칭과 의기투합해 내놓은 첫 음반에 피아졸라, 라벨, 몬테베르디의 명곡을 중후한 선율로 담아냈다. 클래식뿐 아니라 탱고, 컨템포러리, 영화음악 등 장르를 넘나들며 정점에 오른 기교와 감성이 흘러 담아내 귓전을 자극한다.

“각자 솔리스트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기에 스케줄 맞추는 게 힘들었으나 함께 연주하는 게 좋아서 했던 거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우정이 깊어서 성사가 된 거죠. 음반은 오랫동안 구상을 해와서 빠른 속도로 진행이 이뤄졌어요. 리웨이 칭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녹음을 했고요.”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작곡가이며 피아졸라 음반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던 파블로 징어와 첼리스트 및 편곡가 제임스 베럴릿이 이들을 위해 편곡 ‘지원사격’을 했다. 송영훈은 피아졸라 음악에 자신만의 음악적 색채를 입혀 파워풀함과 섬세한 기교를 선보였고, 내재된 슬픔과 관능미를 표현했다. 음반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중후한 울림을 선사한다. 특히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 대표곡(리베르탱고, 천사의 밀롱가, 아디오스 노니뇨 등) 6곡이 포진해 눈길을 끈다.

“유학 중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그 무렵 BBC 라디오에서 가슴에 훅 와닿는 음악이 들리더라고요. 베토벤, 슈만, 슈베르트도 아닌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죠. 다음날 BBC에 전화해서 그 시간대에 나왔던 음악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뇨’란 거예요. 제목의 의미가 ‘잘가요 아버지’였고요. 기가 막힌 우연의 일치였죠. 그래서 언젠가는 내게 큰 위로와 감동을 준 피아졸라 음악을 연주해야겠단 마음을 품었어요.”

이외 라벨의 색채감 진한 ‘볼레로’, 몬테베르디의 바로크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식’ 중 사랑의 이중창 ‘푸르 티 미로’, 영화 ‘미션 임파서블’ 테마곡이 수록됐다. 피아졸라의 곡들이 활활 타오르는 불이라면 몬테베르디 곡은 청정지역의 맑은 호수 느낌이라 음반에서 공기정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의 절친들은 솔로이스트로, 협연자로 자주 방한하는 편이다. 한국 청중이 젊고 공연장 수준과 사운드가 뛰어나다는 칭찬을 하곤 한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친구의 모국에서 함께할 수 있어 신난다는 감정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송영훈은 한국을 대표하는 솔리스트이지만 한편으론 국내 실내악 역사를 개척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세종솔로이스츠, 금호현악4중주단,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 MIK 앙상블 등 색깔 다른 실내악단에서 줄기차게 활동해 왔다. 또한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고, 라디오 클래식 음악프로그램 DJ를 맡고 있다. 올해 ‘경기실내악축제’에서는 음악감독 역할을 수행했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그리 다양한 활동을 하느냐’고 질문하시는데 궁금한 걸 안하면 못견디는 성격이에요. 이런 저런 활동이 다 음악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요. ‘클래식의 대중화’ 수식어는 신경 쓰지 않아요. 공부를 통해 지식과 경험, 연륜이 쌓이면서 더욱 깊이 있게 내 마음에 와닿는 감동, 음악을 나누고 싶을 뿐이에요. 가족에게 뭔가를 선물했는데 좋아하면 그 이상 기쁜 게 없잖아요. 라디오 DJ 활동도 첼리스트가 무엇인지 더 자세하게 알려주는 역할이라고 여겨요.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보니 그 분야에 대해 깊이가 있어졌고 늘어가는 거 같아 만족스러워요.”

두 아들의 아빠다. 둘째가 백일이 지났는데 호기심 천국이란다. 그런 아들로부터 많은 걸 배운다고 말한다.

“오늘 처음 스스로 몸을 뒤집었어요. 이제까진 누워서만 보다가 이젠 엎드려서 그 시선으로 보게 될 거잖아요. 특히 음악가는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할 듯해요. 요즘 저의 삶은 배워가는 시기인 거 같아요. 전에는 바빠서 스케줄만 좇아갔는데 지금은 보는 눈,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져서 참 행복해요.”

2집에서는 더욱 레퍼토리 선정에 공을 들여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해볼 요량이다. 또한 지난해부터 중국활동을 시작해 올 하반기에 베이징, 시안 등지에서 독주회 투어를 진행한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경기실내악축제 음악감독을 맡게 돼 정리 및 새로운 구상에도 돌입해야 한다.

“연주자로서 활동하는 것과 또 다른 역할이 필요하더라고요. 머리공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모든 걸 포용하고 여유롭게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능력이 절대적이죠. 이번에 많이 배웠어요. 무척 재미나더라고요. 내가 주인이 돼 프로그램을 짜서 ‘저희 집으로 오십시오’ 하는 느낌이라 색다른 기분이었어요. 타이밍도 맞아야겠지만 무슨 일이든 준비가 돼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거겠죠.”

에필로그- 오랜만에 만난 그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청춘의 활기, 중년의 여유로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나 할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가족이었다.

“원래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이리 바쁜데...좋은 남편,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었죠. 그런데 결혼과 출산, 존재 자체가 기쁨인 아이들로 인해 바뀌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크게 영향을 미칠줄 몰랐어요. 전설적인 작곡가들도 대부분 가족이 있었고 사랑, 슬픔, 행복, 죽음을 겪으며 위대한 음악을 남겼잖아요. 일단이나마 직접 체험하게 된 거니 그게 가장 큰 변화인 거 같아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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