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로 이루는 감동 신화와 투지를 불태우는 주인공, 같은 건 없다. 대신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오목소녀'가 있다. 경보에 도전하는 소녀 만복을 조명한 영화 '걷기왕'을 본 관객이라면 반가울 것이다.

영화 '오목소녀'는 한때 바둑왕을 꿈꿨으나 현실은 기원 알바생인 이바둑(박세완)이 김안경(안우연)을 통해 오목을 접하면서 한판 승부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목소녀'는 열정과 의욕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상하고, 그래서 재밌다. 영화를 연출한 백승화 감독을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웹드라마로 먼저 제작됐다가 영화로 거듭났다. 만화적이고 과장된 연출로 유머를 꾀했다는 인상도 받았다.

A. 원래 이런 연출을 좋아한다. '오목소녀'는 웹드라마로 시작해서 좀 더 편하게 하고 싶은 걸 했던 것 같다. 영화로 시작했다면 드라마적인 부분에서 관객들이 어색하게 느끼지 않도록 더 조심했을 거다. 괜찮겠냐고 물으면 작은 화면으로 바꿨는데 괜찮아, 이런 얘길 많이 했다. 여러 부분에서 농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전체적인 톤이 전작 '걷기왕'과 비슷하다.

A. '걷기왕' 시나리오를 쓸 때 '오목소녀'의 소재를 떠올렸다. 사실 '걷기왕'보다 먼저 썼다. 그때는 주인공이 고등학생이었다. '걷기왕'과 '오목소녀'가 완전히 다른 얘길 하는 건 아니다. 주제도 사실 비슷하다. '오목소녀'는 편하게 작업했다. 웹드라마라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영화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욕심도 없었다. 유머를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거다. 

 

 

Q. 스포츠물에서 여성이 주연인 경우는 흔치 않다. SNS를 보니 페미니즘에도 관심이 많던데, 이와 연결된 선택인가?

A. 두 편 연달아서 이렇게 만드니까, 그런 질문을 최근 많이 받고 있다. '걷기왕' 때는 그런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중심인물을 여성으로 만든다거나 하는 페미니즘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남성이 주인공이 돼야 투자받기 편하다는 얘기도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남성이다 보니 분명한 한계도 느낀다. 내가 구현할 수 있는 여성 캐릭터가 한정적인 것 같다. 여성 서사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도 있는데 그렇게 읽어 주셔서 고맙다.

Q. 성별을 너무 의식하면 되레 편견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기도 하는데 백승화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는 평이다.

A. 대중성은 보편성이다. 보편성엔 편견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 여성이 트럭 운전사라면 난 재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거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항상 고민한다. '걷기왕'과 '오목소녀'는 거기서 벗어나 자유롭게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다.

Q. 다음 영화도 스포츠를 다룰 예정인가. 게이트볼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A. 스포츠에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다. 운동을 즐기지도 않는다. 게이트볼을 다뤄도 똑같은 얘길 하진 않을 거다. 만약 한다면, 노인층에 대한 얘기가 될 것이다. 노인이라고 하면 승부욕이 없고, 게임에서 져도 훈훈하기만 할 거라고들 생각한다. 승부욕이 넘치는 노인을 주연으로 그리면 재밌을 것 같다.

 

 

Q. 전공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스태프 일도 했고, 드러머로도 활동했다.

A. 자잘하게 한 건 많다. 근데 돈벌이로 할 만한 게 없다. 뭐 하나를 진득하게 해서 장이 되면 되는데, 거기까지는 못 간다. 그나마 영화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영화는 많은 사람과의 협업이다. 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힘들고 어렵다. 혼자 집에서 글 쓰거나 그림 그리거나 만드는 걸 좋아한다.

Q. '청춘'이라는 키워드가 백승화 감독과 얽혀 있는 것 같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부터 그랬다.

A. 특별히 청춘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성장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그 무렵의 인물이 좋다. 어리숙한 캐릭터가 좋다. 개인적으로도, 누군가를 만날 때 완벽한 사람보다 부족한 면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그런 태도다.

Q. 어릴 때는 어떤 청소년이었나. 왠지 반항적이면서 내성적인 성격이었을 것 같다.

A. 남중 남고를 나왔다. 지금 185cm인데, 어릴 때부터 키가 큰 편이었다. 또 험악하게 생겼다. 주변에서 날 쉽게 못 건드렸다.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꽤 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공부와 작별했다. 학교에서는 잠만 잤다. 고등학교가 집에서 멀었다. 한 시간 반 이상 걸렸다. 거기다 야자까지 했으니, 처음에 충격을 받았다. 부모님께 자퇴하겠다고 했다. 만화 그린다고 싸웠는데 그 후로는 날 건들지 않으시더라. 1학년 때부터 야자도 안 했다.

 

 

Q. '반드시 크게 들을 것' 할 때 400만 관객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A. '워낭소리'가 300만 관객을 동원했었다. 록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기대감이 느껴졌다. 머리도 길었고, 가죽 재킷도 입었다. 뭣도 모르고 "'워낭소리' 300만이면 저는 400만 하겠습니다" 했다. 그 영화는 누적관객수 2000명이었다. 독립 영화가 그렇게까지 적게 든다는 건 몰랐다. 상처는 안 받았다. 되게 웃긴다고 생각했다.

Q. 뜬금없지만, 타이거JK 닮았다.

A. 닮았다는 소리를 하도 들었다. 군대에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근데 내가 양복 입고 찍은 사진이 있더라. '언제 찍었지' 했는데 내 사진이 아니라 타이거JK씨 사진이었다. 내가 봐도 똑같아서 놀랐다.

 

사진=권대홍(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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