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탓일까. ‘돈의 맛’(2012), ‘내부자들’(2015)에 이어 또 한 번 우리 사회구조를 탐구하는 영화가 나왔다. 오는 29일 개봉을 앞둔 ‘상류사회’(감독 변혁)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추악한 상류인생을 바라본다.

 

영화 ‘상류사회’는 학생들의 인기와 존경을 동시에 받는 경제학 교수 태준(박해일)이 우연한 기회를 통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가운데, 그 뒤에 도사린 재벌 미래그룹과 민국당의 어두운 거래의 실체가 드러나며 태준과 그의 아내 수연(수애)의 상류사회 입성이 위기에 처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상류사회’는 캐스팅에서부터 기대감을 자극할 만하다. 연기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박해일, 수애가 주인공 부부로 공연하며 극 전반의 긴장감을 끌고 간다. 각각 국회의원, 유명 미술관 관장 등극을 눈앞에 두면서 꿈에 그리던 ‘상류사회’로 입성할 기회를 잡지만, 기존 정치-재벌 카르텔의 검은 음모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절정의 연기로 표현해냈다.

또 그들의 콩트식 유머도 타율이 꽤 높다. “너 이렇게 보니까 힐러리 같다” “나 꽤 잘나가 오늘도 TV에 나왔어” 등 진지함 속에 엉뚱한 대사가 묵직한 영화 분위기를 환기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하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상류사회’는 사실 그리 색다른 영화는 아니다. 영화 팬들은 앞서 대한민국 상류층의 현실을 소재로 이목을 끈 ‘하녀’(2010), ‘돈의 맛’ ‘내부자들’ 등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꽤 흐르고 정권도 바뀌었지만 아직도 ‘갑질’ 이란 단어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는 등 상류사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여전해서인지, 이번 작품에서도 재벌, 정치인의 추악함을 묘사하는 방식은 익숙하다.

주인공은 그 추악한 곳으로 입성하려고 하는 교수 장태준, 미래미술관 부관장 오수연 부부다. 세를 내고 살더라도 강남을 고집하는 수연의 모습에서 알 수 있다시피 상류층의 모습을 ‘흉내’ 내려는 그의 면모는 황새를 쫓아가는 뱁새 꼴이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 꼭대기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을 드러내는 캐릭터 설정이다.

이 현실적인 설정 덕에 관객들은 부부의 모습에 몰입해 서사를 쫓는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상류사회의 입구에서 넘어다 본 ‘갑’의 영역은 다소 진부하다. 막대한 부로 젊은 여자를 탐하는 재벌 한용덕(윤제문), 검은 돈의 실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옳은 보수’의 탈을 쓴 채 은근슬쩍 넘어가는 정치인의 행태는 앞선 ‘하녀’ ‘돈의 맛’ ‘내부자들’ 속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장르에서 재벌을 묘사하는 방식이 클리셰로 굳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도 스스로 이 익숙함에 대한 약점을 알고 있는지, 곳곳에 자극적인 킬링 파트를 삽입했다. 여러 차례 이어지는 섹스신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장면들도 꽤나 흥미롭지만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특히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재벌 한용덕은 자신의 섹스를 예술로 취급하면서 젠체하는 면모는 아쉽다. 지난해 ‘브이아이피’가 비판을 받았던 것처럼, 아무리 영화 진행에 필요하다지만 영화 전반에 짙게 깔린 여성의 몸매에 대한 노골적인 시선은 당황스러울 정도다.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명확한 메시지를 견지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에도 ‘상류사회’가 품고 있는 메시지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큰 공감을 살만하다. “백날 땀 흘려봐야 한용석 피 한 방울 못 쫓아가”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꼭대기에 사는 줄 알아” “재벌들은 겁 없이 행동해” 등등 폐부를 찌르는 대사는 ‘내부자들’ 속 “대중은 개돼지 입니다”라는 말에 이어 또 한 번 관객들의 분노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러닝타임 2시간. 청소년 관람불가.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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