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계획이 뭔 줄 알아? 노 플랜!” 봉준호 감독은 무계획으로 엄청난 계획을 세워버렸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를 점령하고 나서, 여정의 마지막인 2020년 할리우드 중심,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까지 접수해버렸다. 한국 최초, 아시아 최초, 외국어영화 최초.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이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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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작은 프랑스 칸에서 시작됐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평단의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페인 앤 글로리’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레미제라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을 제치며 당당히 한국영화 100년사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때만 해도 ‘기생충’의 여정이 오스카까지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청룡영화상에서 작품상을 받은 뒤 한국영화 대표로 오스카 국제영화상에 접수됐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한국영화 최초로 쇼트리스트에 올랐지만, ‘기생충’은 여기서 더 나아가 당당히 최종 후보에 이름 올렸다. 그것도 국제영화상뿐만 아니라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까지 말이다. 

10월, 북미 개봉 후 ‘기생충’ 신드롬이 터져버렸다. 북미 관객들은 ‘기생충’이 보여주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관계, 반전 스토리, 연출 등 모든 것에 빠져들었다. ‘Bong Hive(봉 하이브)’라는 말이 나오고, 포스터가 패러디 되고, 박소담이 부른 ‘제시카 송’이 유행을 탔다. 한마디로 ‘기생충’이 할리우드에 기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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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던 ‘기생충’은 북미에서 역대 외국어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비평가협회 시상식이 시작되면서 북미에서 관수는 늘어났고 그 영향력은 더 커져갔다. 할리우드 스타들과 감독들도 ‘기생충’의 매력에 푹 빠졌다.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시즌에 핫했다. 시상식의 주인공은 늘 봉준호 감독이었다. 

그와 함께 통역가 샤론 최(최성재)도 인기를 얻었다. 봉준호 감독의 유머를 고스란히 영어로 통역해 현지인들을 웃게 만든 것이다. “1인치의 장벽” “비건 버거” 등은 샤론 최의 통역이 아니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평가협회상을 휩쓴 ‘기생충’의 메이저 시상식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1917’이 감독상과 작품상(드라마)을 수상하며 강력한 오스카 수상 후보로 떠올랐다. 이어 크리틱스 초이스, 미국제작가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1917’은 작품상을 휩쓸었다. ‘기생충’은 한국영화 최초로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작품상에 해당되는 영화부문 캐스팅상(앙상블상)을 수상했지만 ‘1917’과 비교하면 수상의 임팩트가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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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생충’은 미국작가조합상(WGA)과 미국편집가협회상, 미국미술감독조합상등에서 수상을 하며 반전을 꾀했다. 오스카가 다가오면서 온라인에선 ‘기생충’ 대세론이 커졌다. LA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도 ‘기생충’이 수상할 수 있다는 추측을 쏟아냈다. 아카데미협회가 다양성 문제로 비판을 받으면서 시의적절하게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는다면 그 오명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선택은 ‘기생충’이었다. 샤를리즈 테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들리 쿠퍼, 마틴 스콜세지 감독, 톰 행크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샘 멘데스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 토드 필립스 감독, 마고 로비, 시얼샤 로넌 등 현장에 있던 모든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며 ‘기생충’을 응원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기생충’은 한국영화 최초로 오스카 수상, 아시아 영화와 외국어 영화 최초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92년 오스카 역사에 새로운 한 획을 그은 ‘기생충’은 101년사 한국영화 역사도 새로 썼다. ‘기생충’의 영광은 내일부터 사그러든다. 이제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작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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