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보다 더 가슴 답답한 비보가 7월의 끝자락에 전해졌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23일 아파트에서 투신 사망했다. 유서 내용은 “가족(아내)에게 미안하다,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계 없다”는 것이었다. 노 의원은 ‘드루킹’ 김동원씨에게 2016년 총선 전 불법 정치자금을 건네받은 의혹을 받으며 특검에 소환될 예정이었다.

 

노회찬 의원 사무실. 사진=연합뉴스

고인에 대해서는 이제 애도 외에는 그 무엇도 불가능하다. 남은 사람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 ‘드루킹’ 댓글조작 의혹 수사는 차질이 불가피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특검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 요구의 목소리가 크다.

이런 가운데 유서에서 ‘미안함’의 대상으로 언급된 노 의원의 아내 김지선씨는 문제의 불법 정치자금을 직접 받은 인물로 함께 주목받고 있던 터라 남편의 죽음과 별개로 앞으로 어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게 될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특검, 남은 가족뿐 아니라 ‘서민의 대변인’이자 진보 논객의 대표주자였던 고인의 정치적 동료들과 지지자들 역시 각자 남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9년 전인 2009년 5월23일, 고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인 봉하마을에 귀향했으나 재임 중 친인척 비리로 검찰조사를 받다가 사저 뒷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 그는 홀연히 떠났지만 남은 사람들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결과적으로 그의 자살은 우여곡절 끝에 ‘의외의’ 차기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그의 옆을 지켜온 측근 문재인 대통령은 대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세상을 떠난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는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더 예전에도 충격적인 투신 사건들은 있었다. 15년 전인 2003년 8월에는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다섯째 아들이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자신의 회사 사옥에서 투신했다. 당시 그는 대북 불법송금 사건 조사를 받고 있었다. 남은 가족들의 괴로움은 컸지만, 물려받아야 할 책임 역시 컸다.

전업주부로 생활하던 아내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 회장직을 맡았고 딸 정지이(현대유엔아이 전무)도 그룹 일에 뛰어들며 동분서주했다. 아내와 딸이 그룹 일을 도맡았던 당시의 상황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재계의 드라마틱한 이야기 중 하나다.

 

고 노회찬 의원의 사무실에 걸린 의정활동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 노회찬 의원의 경우 주변 사람들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무한 책임감과 미안함, 정치인생 내내 견지해온 원칙과 소신이 훼손된 것에 대한 자괴감 등이 극단적 선택을 불러왔을 듯하다.

고인을 추모하는 가운데서도 ‘꼭 그래야 했나’라는 의문이 계속 고개를 드는 것은, 어깨에 무거운 그림자를 대신 져야하는 가족과 동료, 친구들의 삶이 죽음보다 어쩌면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워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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