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시대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정부가 포주의 역할을 하던 때가 있었다. 외면할 수 없는 근현대사의 쓰라린 단면. 양공주라 불리었던 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애국자라 칭송하며 또 한편으로 배척했던 그들은 왜 잊혔을까.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아메리카 타운’은 80년대 미국을 상대로 관계를 맺던 기지촌 여성, 이른바 ‘양공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소년 상국은 아메리카 타운의 작은 사진가게 아들. 아버지의 냉대 속에 소년은 홀로 살아간다.

주 고객은 미군과 양공주들이다. 미군은 양공주의 나체를 찍어 인화하고 양공주들은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다. 소년은 그 사이에서 어떤 진실한 사랑도 얻지 못한 체 비틀비틀 성장한다.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을 아버지 몰래 인화하며 그리움을 좇고 있을 뿐이다.

그런 소년의 앞에 나타난 고영림. 어린 시절 양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런 아버지를 피해 아메리카 타운을 온 여자. 그러나 영림은 밝고 쾌활하다. 여전히 집을 그리워하고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기도 하다. 상국은 그런 영림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무겁고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여러분은 애국자입니다!”를 외치는 정부의 고위 관리자 앞에서 기지촌 여성들은 껌을 씹고 담배를 피워대며 경멸과 냉대의 시선을 보낸다. 미군을 상대로 외화벌이를 하는 애국자라 칭송하면서도 ‘양공주’라 경멸하는 그들을 조롱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영화의 모습은 단지 상상이 아니다. 지난 시절 정부는 실제로 기지촌 여성들을 모아두고 미군 상대하는 법을 교육했고, 그들을 애국자라 불렀으며 정기적으로 성병을 관리하기도 했다.

또한 실제 일어났던 동두천 윤금이 살인사건을 다룬 점도 인상적이다. 동두천 윤금이 살인사건은 기지촌 내에서 행해지던 심각한 인권 유린을 외부로 알린 사건이다. 이로 인해 SOFA 협정에 대한 비난 여론이 생기며 기지촌 내외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상국은 영림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고 여긴 기지촌 내 일들의 진실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소년성의 상실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사회로 확장하고 있다. 상국은 영림을 통해 기지촌에서 만연히 행해지는 인권 유린, 더 나아가 몽키 하우스라는 처참한 현실을 마주친다.

“너 앞으로 여기 오지마”라는 영림의 말은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로 들린다. 상국은 알지 못했던 사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깨닫고 진정 소년성을 상실한다.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잔혹하다. 영화 속 영림은 몽키 하우스로 사라지고 상국은 첫사랑의 실패와 함께 잔인한 진실을 알아버린다. 그렇다면 진짜 양공주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태원 거리에서 미군을 환영하던 수많은 불빛은? 우리는 그들을 잊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첫사랑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상국처럼, 아니 그보다 더 잔인하게도 기억에 묻었을 뿐이다.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시간 33분.

사진=시네마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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