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17살의 어린 나이에도 1919년 3월1일, 고향 충청남도 병천으로 돌아가 3·1 운동을 가장 앞장서서 이끌었던 어린 영웅의 일대기는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다. 그의 이야기는 위인전, 영화 등 많은 미디어를 통해 새로이 탄생되고 기억됐기 때문. 하지만 그가 3·1운동을 끝내고 서대무 형무소를 들어갔을 때를 다룬 장편영화는 ‘항거: 유관순이야기’가 처음이다. 영화 ‘덕혜옹주’ 제작진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해 '항거: 유관순 이야기'로 깊은 감동과 울림을 전한다.

유관순의 일생은 투쟁이었고 꺽이지 않은 자유 그 자체였다. 그의 삶은 현재까지도 되새겨지며 독립운동의 큰 획으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일까, 유관순 역을 맡은 배우 고아성은 이번 역할에 많은 부담과 책임을 느꼈던 것 같다. 실제로 유관순의 고통을 체험해보고자 고아성은 열흘간 금식을 강행하기도 했다고. 또한 언론시사회 당일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그가 완벽하게 유관순에 몰입했다는 사실은 영화 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영화는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영웅의 일대기였다. 그럼에도 신선하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고아성의 진실된 연기때문일 터.

조민환 감독은 유관순 역에 고아성을 캐스팅한 이유를 두고 “고아성은 유관순의 눈에서 봤던, 애절한 삶의 느낌을 가진 배우”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고아성이 연기한 유관순은 처절하고 단단했으며, 보는 내내 사실은 한번쯤 굽혀도 되지 않냐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자유를 갈망했던 유관순 그 자체였다.

'항거'는 가슴이 뜨겁게 벅차오르던 3·1운동을 조명한 것이 아니고 그 이후의 1년,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기록에 주목해 색다름을 더한다. 독립운동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들은 일본에 맞서 운동을 펼치는 모습을 보다 큰 스케일로 다뤘다.

그러나 ‘항거’는 감옥 안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지키고자 했던 유관순의 모습을 담았다. 이와 함께 ‘8호실’ 여성들도 주목할 만하다. 독립영화에서 다양한 연기를 선보여 주목받은 김새벽이 기생 김향화 역을 맡았고 최근 드라마 ‘킹덤’에 출연한 김예은이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역을, 독립영화계의 신예 정하담이 다방 종업원 이옥이를 맡았다.

‘8호실’의 여성들은 비록 몸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미래를 얘기한다. 그들은 여성에게 주어진 기회가 제한된 1900년대에서 신분과 성별은 아무 상관없는 세상이 언제 올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누워서 잠을 잘 수도 없게 좁은 감옥 안에서 발이 붓지 않게 계속 빙빙 방안을 걸어야 했던 고통 속에서도 "만세를 부른 걸 후회하지 않아"라고 말한다. 오히려 임시정부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을 다짐한다. 

그들뿐만 아니라 3·1운동 당시 시장통에서 아들을 잃은 만석모, 감옥에서 아이를 낳은 수감인 등 다양한 여성상을 조명해 신분과 연령에 상관없이 독립을 갈망하고, 만세를 외쳤던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장서 칼과 총을 들지 않아도 그 시대를 살던 평범한 사람들도 독립운동가였음을 보여주며 이 영화는 그들의 용기있는 외침에 경외를 표하게 만든다. 

또한 ‘항거’는 옥중에서의 장면을 흑백으로 처리, 아름다운 미장센을 완성했다. 그러나 독립 운동을 하던 과거의 순간은 컬러로 담아내 유관순이 독립운동을 하며 자유를 외칠 때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감독은 풍경이나 공간이 넓은 장면을 흑백으로 처리하면 오히려 답답해 보일 수 있지만 옥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흑백은 인물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일제의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한 번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유관순. ‘항거’에서 유관순은 “자유란 하나뿐인 목숨, 내가 바라는 것에 맘껏 쓰다 죽는 것”라는 대사를 던진다. 유관순을 맡은 배우 고아성은 유관순에 대해 “죽음보다는 삶으로 기억되는 인물로 남길”이라는 소감을 남겼던 것처럼 유관순은 그의 치열했던 삶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2월27일 개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시간 45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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